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김현중
한의학과 정치학은 전혀 다른 학문처럼 보이지만,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는 공통된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한의학은 인간의 몸을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보고 질병의 원인을 찾으며 균형을 회복하려는 학문이고, 정치학은 사회를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보고 사회 문제의 원인을 찾아 제도를 통해 이를 개선하려는 학문이다. 두 학문 모두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고, 눈앞의 증상만이 아니라 그 원인과 구조를 함께 본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한의학에서는 같은 질병이라도 단순히 병의 이름만으로 치료하지 않는다. 환자의 체질, 생활습관, 스트레스, 환경, 수면 상태 등 다양한 요소를 함께 고려해 몸 전체의 균형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살핀다. 즉 질병을 몸의 한 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이 깨진 결과로 이해한다. 이러한 전인적 관점은 한의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단순히 증상을 제거하는 치료가 아니라 재발을 줄이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관점은 정치의 역할과도 유사하다. 우리 사회를 한 번에 완벽하게 바꾸려는 ‘유토피아적 개혁’보다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하나씩 발견하고 그것을 조금씩 고쳐 나가는 ‘점진적 개혁’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다. 즉 정치의 역할은 완벽한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고통을 만들어내는 문제를 찾아 그것을 줄여 나가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병의 원인을 찾아 몸의 균형을 회복해 나가는 한의학의 치료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한의학은 단순히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을 넘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학의 역할과도 연결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만성질환, 노인성 질환, 돌봄 문제, 지역의료 격차와 같은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큰 병원을 중심으로 한 급성기 치료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예방과 관리, 생활 습관 개선, 지역사회 중심의 지속적인 돌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즉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료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의료가 아니라, 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며 삶을 함께 돌보는 의료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은 이러한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의학이다.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질병 치료뿐 아니라 예방과 양생, 생활 관리와 같은 영역을 함께 다루어 왔으며, 환자의 삶과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전인적 관점을 강조해 왔다. 이는 만성질환 관리, 노인 건강 관리, 방문진료, 지역사회 돌봄과 같은 분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한의학은 병원 안에서의 치료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의 건강을 관리하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는 의학이라고 볼 수 있다.
몸을 치료하는 일과 사회를 치료하는 일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전체를 보고 원인을 찾으며 균형을 회복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한의학이 몸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학문이라면, 정치와 사회 제도는 사회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초고령사회와 만성질환 중심 사회로 변화하는 지금,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학은 점점 더 전인적 관점과 예방, 관리, 돌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의 역할과 필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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