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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한의 주치의를 공식화했다, 한의계는 준비됐는가
정부가 한의 주치의를 공식화했다, 한의계는 준비됐는가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정재욱 숫자가 먼저 말한다. 2024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 누적 실적에서 한의사의 방문 건수는 12만 3,089건으로, 의사의 7만 8,931건을 크게 웃돌았다. 참여 공모 기관 3,993곳 중 한의원이 2,926곳(73%)을 차지했고, 실제 청구 기관 1,171곳 중에서도 한의원이 868곳(74%)이었다. 이 수치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2024년 7월 기준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은 의원 3만 6,302곳, 한의원 1만 4,680곳으로, 한의원의 비중은 약 29%다. 전체 기관 수에서 의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의원이, 방문진료에서는 참여율과 건수 모두 의원을 압도하고 있다. 우연이 아니다. 정책이 설계되기 전에, 현장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누구를, 어디서 만났나 방문진료의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의과 방문진료의 다빈도 질환은 알츠하이머 치매, 본태성 고혈압, 욕창궤양 순이었다. 반면 한의원 방문진료에서는 등통증, 연조직 장애, 중풍 후유증이 상위를 차지했다. 두 직역이 다른 환자를 만나고 있다는 뜻이다. 의과가 내과적 만성질환과 중증 노인 환자를 담당하는 사이, 한의는 기능 회복과 통증·뇌졸중 후유증 영역에서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한의 방문진료가 의과의 보조가 아니라 독자적인 역할 분담 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근거다. 정책이 현장을 뒤따르다 현장이 먼저 달리자 정책이 그 방향을 공식화했다. 보건복지부가 2025년 12월 확정한 '제5차 한의약 육성발전 종합계획(2026~2030)'은 4대 목표의 첫 번째로 '일차의료 강화를 통한 한의약 접근성 제고'를 내세웠다. 5년짜리 국가 로드맵이 한의 일차의료를 핵심 축으로 처음 공식화한 순간이다. 핵심 카드는 어르신 한의 주치의다. 정부는 2026년 상반기까지 사업모형을 마련하고, 하반기부터 2029년 상반기까지 시범 운영한 뒤 2029년 하반기에 본사업을 시행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돌봄통합지원법 시행과 맞물려 한의 방문진료·재택의료 제공을 확대하고, 한의 임상 용어 코드 체계 구축과 문진·음성·영상 등 비정형 데이터 분석기술 개발을 통해 국가 의료 데이터 시스템에 한의약 데이터를 연계한다는 계획도 담겼다. 더 넓은 그림도 있다. 2026년 7월부터는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국형 주치의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기존 행위별 수가 대신 환자 등록과 지속적 관리 노력을 보상하는 일차의료 기능강화 통합수가가 도입되며, 2029년 이후 참여 지역을 확대한다. 2031년까지 통합수가를 본격 도입한다는 계획도 예정돼 있다. 한의원이 이 틀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아직 설계 중이지만, 문은 열려 있다. 건수 뒤에 가려진 숫자 그러나 냉정하게 봐야 할 숫자가 하나 더 있다. 2023년 기준 방문진료 서비스 재이용률은 31.6%였다. 방문진료를 받은 환자 10명 중 7명은 한 번 이용한 뒤 다시 찾지 않았다. 이 수치는 단순한 만족도 문제가 아니다. 일차의료의 본질은 ‘지속성’이다. 환자와 장기적 관계를 맺고, 건강 상태 변화를 연속적으로 추적하며, 필요할 때 적절한 기관으로 연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한 번의 방문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건수에서 의사를 앞서는 현실은 출발점으로 유의미하다. 하지만 재이용률 31%가 보여주는 단절의 벽은, 지금의 방문진료가 아직 일차의료가 아니라 일회성 왕진에 더 가깝다는 냉정한 자기 진단을 요구한다. 데이터가 연결돼야 근거가 된다 구조적 과제도 남아 있다. 방문진료 현장에서 중풍 후유증 환자를 만나고, 만성 통증을 관리하는 데이터가 쌓이고 있지만, 이것이 체계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건수가 많아도 근거로 전환되지 않는다. 정부가 한의 임상 용어 코드 체계 구축과 국가 의료 데이터 시스템 연계를 5차 종합계획의 핵심 과제로 명시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현장 데이터가 표준화되고 축적될 때, 비로소 정책 근거이자 학술 근거로 작동한다. 올해 대한한의학회가 전국한의학학술대회 주제를 "일차의료 중심, 한의학!"으로 내건 것은 이 흐름 전체를 학술 아젠다로 수렴하려는 시도다. 방문진료 데이터가 증명한 가능성, 5차 종합계획이 제시한 기회, 재이용률이 드러낸 한계.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붙들고 학술·임상·교육 차원에서 무엇을 바꿀 것인지 묻는 것. 그것이 지금 한의계에 던져진 진짜 질문이다. 정부가 한의 주치의를 공식화했다. 이제 답해야 할 차례는 한의계다. 본 기사는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국회 제출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 현황 자료(백종헌 의원실, 2024), 제5차 한의약 육성발전 종합계획(2025.12.)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학생의 시선에서 의료인류학을 보다 1] "고치는 의술"을 넘어 "가꾸는 돌봄"으로: 한의대생이 마주한 의료인류학
학생의 시선에서 의료인류학을 보다 1] "고치는 의술"을 넘어 "가꾸는 돌봄"으로: 한의대생이 마주한 의료인류학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김인우 한의과대학의 예과와 본과 과정은 방대한 양의 경전과 임상 지식을 습득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아직 환자의 맥을 짚어보거나 현장을 발로 뛰어본 적 없는 예비 의료인에게 '돌봄'이라는 단어는 때로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구호처럼 다가오곤 한다. 의료인류학은 바로 이 지점, 기술로서의 의학이 놓치고 있는 '인간'의 자리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의료인류학자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은 현대 의료의 가장 큰 위기를 '질병(Disease)'이라는 생물학적 이상 상태에만 집착한 나머지, 환자가 삶의 맥락 속에서 경험하는 '질환(Illness)'의 서사를 놓치는 데서 찾는다. 그에게 돌봄이란 단순히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는 노동이 아니다. 돌봄은 "우리의 세계(몸, 자아, 환경)를 유지하고, 지속하며, 개선하는 모든 활동"이며, 그 핵심은 환자가 자신의 고통에 부여하는 의미인 '질환 서사'에 온전히 응답하는 것이다. 특히 치매와 같은 만성 퇴행성 질환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치료'의 과정을 따르지 않는다. 끝없는 쇠락과 정체기가 반복되는 이 비논리적인 고통의 시간을 "지워버려야 할 얼룩"으로 치부하지 않고,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로 정리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돌봄의 본질이다. 한의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을 신체와 정신, 환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소우주로 파악해 왔다. 이러한 전인적 접근은 의료인류학이 추구하는 돌봄의 가치와 본질적인 궤를 같이한다. 한의학의 핵심 개념인 양생은 건강한 생활 습관을 통해 자연치유력을 강화하는 활동이다. 이는 돌봄을 단순히 결핍을 메우는 행위가 아니라, 생명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적극적인 '가꿈'의 과정으로 정의하는 의료인류학적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서양의학이 해부학적 몸에 집중할 때, 한의학은 기(氣)의 순환과 장부의 조화를 강조하는 '동아시아적 몸'을 이야기한다. 이는 인간을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보는 '관계적 존재론'을 임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효율성과 표준화만을 추구하는 현대 의료 시스템에서 환자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한의학적 진료는 침 치료와 같은 밀착형 행위를 통해 환자와 깊은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데 강점이 있으며, 이는 환자의 호소에 그대로 응답하는 '반응성'을 실천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현장을 뛰어본 적 없는 학생일지라도, 의료인류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는 이미 돌봄의 주체가 될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봄은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 겸허히 머물며 그 삶의 무게를 함께 견디겠다는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배우는 시간에도 이 태도를 새기며 나아가는 것이 한의계,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는 길일 것이라 믿는다. 한의학의 지혜를 의료인류학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장차 우리가 만날 환자들에게 단순한 처방전 이상의 '삶을 지탱하는 힘'을 제공하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메디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는 국립소록도병원 한의과 공중보건의사입니다.
저는 국립소록도병원 한의과 공중보건의사입니다.
국립소록도병원 한의과 공중보건의사 강문식 지난주 목요일, 논산 훈련소에서 갓 나온 동기와 후배들이 연락을 해왔다. 3주 동안의 훈련소 생활은 어땠고, 지역배치를 어떻게 받게 되고, 근무지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는 인계장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등이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되었는데, 필자 역시도 2년 동안 겪은 경험을 추억하게 되었다. ……………… 필자는 전라남도 끝인 고흥, 그중에서도 제일 멀다고 할 수 있는 소록도에 있다. (고흥의 나로도, 거금도, 그리고 전남의 다른 지역에 계시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2년 전인 2024년 4월부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근무 중인 3년차 한의과 공중보건의사이다. 학부생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보의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와서,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머리를 밀고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오시는 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당시 논산 훈련소 3주는 인생에서 제일 긴 3주라고 생각이 들었다. 6년 만에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훈련을 받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하는 것이 꽤나 불편하고 쉽지 않았다. (훈련소에 나와서는 일명 ‘논산 폐렴’이라고 부르는 심한 목감기에 걸려 쉰 목소리로 2~3달을 지내기도 했다.) ……………… 소록도를 내려오는 첫날에는 차가 없어서 부모님 차를 타고 내려왔다. 고흥의 우주항공로를 달려가다 보면 ‘우주휴게소’라는 이름의 작은 휴게소가 있는데 거기서 먹은 꼬막비빔밥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맛도 맛이고 얼떨결에 고흥에 내가 있다는 게 안 믿겼던 탓이다. (우주휴게소는 매주 일요일 휴무이다.) 처음 소록도에 도착했을 때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병원 본관을 아무리 둘러봐도 한의과 진료실이 없는 것이다. (소록도 병원은 본관과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고 보니 한의과 진료실은 병원 별관에 있었다. 나중에 병원 직원 선생님들 말씀으론, 까까머리를 한 남자아이(원내에는 20대 직원이 거의 없다)가 당황한 표정으로 병원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어서 딱 봐도 새로 온 공보의로 짐작하셨다고. ……………… 며칠에 걸쳐 소록도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소록도는 너무나 아름다운 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소록도병원, 중앙공원, 교회와 성당, 소록도박물관, 녹동초등학교소록도분교 등 소록도 곳곳에 스팟들도 많고, 친절한 직원분들과 환자분들, 주로 밤이 되면 내려오는 사슴떼까지 정말이지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소록도와 관련된 역사를 자세히 알아보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아름다운 소록도에서 지내다보니, 여태 살면서 느껴보기 어려웠던 ‘평화롭다’라는 감정을 자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 학부를 졸업하고 첫 직장이다보니, 갓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진료를 열심히 보았다. 환자분들과 직원분들께 인사도 열심히 했다. 예쁘게 봐주신 덕분일까, 2년 동안에 한의과 외래 환자 수는 크게 늘었다. 외래, 마을, 병동을 가리지 않고 진료를 보았다. 그동안 나름 한의학에 애정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진료는 그 애정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매일 오후마다 진료실에서 시간이 나는대로 한의학 서적을 끼고 살았던 것 같다. ……………… 진료를 직접 보고난 후 느끼는 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의학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한의학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 이전부터 꾸준히 한의학 무용론을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원래 한의계 밖에 사람들뿐이었는데, 최근 들어 ‘스톡홀름 신드롬’에 걸린 내부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분들이 한의학의 힘으로 치료된 환자들을 만나보면 좋겠다. 현대의학의 인정을 받아내지 못한 채 한의과에 내원하는 환자들이, 한의학의 인정을 받고 더 나은 상태가 되거나 씻은 듯이 병이 낫기도 한다. 한의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 어느덧 공중보건의사 마지막 연차가 되었다. 3년간 이동 없이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록도’, ‘한센병’, ‘한센인’에 대해 이름도 생소하였으나 지금은 누구보다 ‘소록도’, ‘한센병’, ‘한센인’을 애정하고, 이해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연재할 기사를 통해 ‘소록도’, ‘한센병’, ‘한센인’에 대해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저작권자 © 메디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대한 노트 : ③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기억으로 끝난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대한 노트 : ③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기억으로 끝난다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이하경 2021년 4월 1일에 거짓말처럼 문을 연 세계문학 서점인 ‘서점극장 라블레’는 2026년 4월을 끝으로 서점 운영을 마치기로 했다고 한다. 서울시에서 문학을 쏘아오던 한 대의 등명기가 소등을 앞둔 모습을 보니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 속 인물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나뉘고 흩뿌려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시간상 이어져야 할 1부와 3부 사이에 의도적으로 미래의 이야기인 2부를 끼워 넣었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르투로 벨라노와 울리세스 리마의 행적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그 주변 인물들의 입과 몸을 통해 묘사하는 다성적 방식을 택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문학을 하고자 했던 내장 사실주의 그룹도 이전의 수많은 분파들과 마찬가지로 쇠락과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벨라노와 리마가 멕시코시티를 떠나 세계를 소요하자 내장 사실주의자들 간의 교류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하신토 레케나는 1976년 11월 기록에서 말한다. “울리세스와 벨라노가 소노라로 떠났을 때, 나는 그룹이 소멸 중임을 직감했다. 장난이 다 끝났다는 듯이.” 서점극장 라블레는 세계문학을 엄숙하고 난해한 대상이 아닌 친밀하고 즐거운 일종의 대화임을 전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다. 매주 목요낭독회를 진행하여 작품을 새롭게 감각하고자 했고, 사튀로스 문학 수다의 밤을 통해 신간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가장 독특한 점은 체호프의 「검은 수사」, 고골의 「외투」 같은 단편을 각색하여 서점에서 연극을 진행하는 문화였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웃음은 그렇게 다시 이 세상으로 새어 나왔다. 불은 명확하지만 주변부로 갈수록 아리송하다. 캠프파이어의 재가 어딘가로 날아가 숨어버리듯, 아지랑이가 일렁이듯, 웃음소리도 그렇게 살랑살랑 날아가 녹아버리는 것일까? 즐거움을 기점으로 삼아 시작된 일은, 사건은, 시대는 어디에 닿아 끝날까? 23장은 1994년 7월 마드리드 도서전의 작가들이 저마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하며 끝을 맺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냐키 에차바르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비극으로 끝난다.” 아우렐리오 바카,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희비극으로 끝난다.” 페레 오르도녜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희극으로 끝난다.” 훌리오 마르티네스 모랄레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암호작업으로 끝난다.” 파블로 델 바예,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공포 영화처럼 끝난다.” 마르코 안토니오 팔라시오스, “희극으로 시작된 것은 개선행진처럼 끝난다. 그렇지 않은가?” 에르난도 가르시아 레온,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미스터리로 끝난다.” 펠라요 바렌도아인,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허공에 대고 하는 위령 기도로 끝난다.” 23장의 끝은 내장 사실주의자였던 펠리페 뮐러가 벨라노를 떠나보내며 떠올린 것들이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희극적인 독백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웃지 않는다.” 이렇게 통일성 있는 23장을 보면 미술관에서 출구로 가는 길에 있는, 빈 종이에 저마다 소감을 적어 벽에 붙이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일랜드 문학 박물관(MoLI)의 제임스 조이스 전시 끝에도 그런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독특한 푸른 빛의 『율리시스』 초판본을 보고 들어가면 나오는, 조이스의 『율리시스』 창작 노트 맞은편이었다. 그곳에 이르며 관람한 조이스의 작품들 사이에서 무언가 선뜻 적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장 사실주의자들은 옥타비오 파스와 파블로 네루다라는 양대 산맥 사이에서 개골창이 되어 흐르는 대신 차라리 소노라의 사막으로 가 증발하고자 했던 이들이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끝에서 “창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하고 묻는 마데로의 시는 그림을 활용한다는 면에서 세사레아 티나헤로의 유일한 시와 필연적으로 연관성을 갖게 된다. 마데로는 세사레아 티나헤로의 시를 본 적이 없지만, 평소에도 그런 수수께끼를 즐겼던 시인이다. 그의 1월 9일 일기가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행을 즐겁게 하려고 나는 오래전 학창 시절에 배운 수수께끼를 그렸다.” 그 수수께끼는 차에 있던 루페, 벨라노, 리마에게 낸 것이었다. 후에 벨라노와 리마는 세사레아 티나헤로의 시를 보며 그 순간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수수께끼 같은 날, 정말 있었는지 의심되는 날도 있다. 내가 서점극장 라블레에 간 것은 단 하루뿐이었다. 다른 많은 곳이 그러하듯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작 가 본 적은 없는 곳이었다. 구경을 마칠 즈음 나는 언어유희에 관한 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고, 주인은 나보코프의 몇몇 작품을 추천하다가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권해 주었다. 그렇게 수수께끼가 가득 담긴 그 책을 들고나왔다. 그게 전부였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기억으로 끝난다. 저작권자 © 메디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마트폰 시계 속 숨겨진 고대인의 지혜: 하늘을 읽어 몸을 살리다
스마트폰 시계 속 숨겨진 고대인의 지혜: 하늘을 읽어 몸을 살리다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박다혜 현대인의 일상은 초(秒) 단위로 돌아간다. 스마트워치 알림에 쫓기고, 캘린더 앱이 쪼개주는 30분 단위의 시간표 속을 허덕이며 산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이 시간의 뼈대—24시간, 1년 365일, 24절기, 열두 달—는 수천 년 전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고대인들이 공들여 설계한 결과물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하늘을 읽어 만들어낸 시간표가 단순한 날짜 기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 신체의 리듬과 자연의 주기를 하나로 꿰뚫은 정밀한 '웰니스 알고리즘'이었다. 1년 365일의 딜레마: 윤달이라는 오래된 지혜 명절이 되면 스마트폰 캘린더에 나란히 뜨는 양력과 음력. 두 달력을 동시에 쓰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수천 년의 천문 관측이 쌓여 있다. 고대인들이 항상 관찰할 수 있었던 하늘의 두 시계는 태양과 달이었다. 문제는 이 두 시계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순수한 음력으로 12개월을 세면 1년이 354일밖에 되지 않아, 실제 사계절이 순환하는 태양년(365.25일)보다 11일이 짧다. 이 차이가 3년만 쌓여도 계절이 한 달 가까이 밀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윤달(閏月)이다. 오랜 관측 끝에 확립된 '19년에 7번 윤달을 삽입한다'는 규칙은, 그리스 천문학자 메톤이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메톤 주기를 동양의 고대인들이 독자적으로 먼저 계산해낸 결과였다. 이 이야기는 우리 몸에도 하나의 통찰을 준다. 우리 몸도 여러 리듬이 동시에 작동한다. 하루 24시간의 일주기 리듬, 28일 내외의 월 주기, 계절에 따른 호르몬 변화까지—이 리듬들은 서로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고대인들이 달력에 윤달을 넣어 어긋남을 보정했듯, 우리도 몸의 여러 리듬이 충돌할 때 억지로 무시하지 말고 충분한 수면과 계절에 맞는 식단, 주기적인 휴식이라는 '보정'을 넣어주어야 한다. 농업 빅데이터의 결정체, 24절기와 계절 양생법 봄이 오면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붙이고 겨울엔 동지 팥죽을 먹는 풍습은 고대 중국에서 완성된 24절기 체계에서 비롯되었다. 1태양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한 이 시스템은 기온·강우·서리·결빙 등 농업에 필수적인 기상 정보를 체계화한, 지금으로 말하면 고대의 빅데이터 알고리즘이었다. 흥미롭게도 현대 의학 연구들은 환절기에 실제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감염성 질환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기온과 습도의 급격한 변화가 점막 방어 기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고대의 양생법은 이를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봄철 냉이·달래·두릅에 풍부한 비타민C와 엽산은 겨울 동안 위축된 면역계를 재가동시키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여름의 과도한 냉음식 경계, 가을의 배와 도라지를 통한 기관지 보호, 겨울의 충분한 수면 권장—절기마다 전해 내려온 음식과 습관들은 모두 몸이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미리 준비시키는 예방의학의 원형이었다. 고대의 시간표가 곧 생체 리듬 솔루션이었다: 12시진과 자오유주도 이 기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고대인들은 1주야를 12지(地支)를 사용해 12시진(時辰)으로 나누었고, 각 시진은 현대의 2시간에 해당한다. 한의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락(經絡)의 기혈(氣血) 흐름이 이 12시진을 순환하며 각 시진마다 특정 장기에 집중된다는 자오유주도(子午流注圖) 이론을 발전시켰다. 놀랍게도 이 고대의 시간표는 현대 시간생물학의 연구 결과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가장 중요한 시진은 자시(子時, 밤 11시~새벽 1시)와 축시(丑時, 새벽 1시~3시)다. 자오유주도에서 자시는 담낭(쓸개)에 기혈이 집중되는 시간으로, 담즙의 재생과 해독이 이루어지는 골든타임이다. 현대 의학 역시 밤 11시 전후부터 성장호르몬 분비가 시작되고 간과 담낭의 해독 효소 활성이 높아진다고 확인한다. 이 시간에 스마트폰 블루라이트를 쬐고 있으면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고 교감신경이 자극되어 담낭의 수축·이완 리듬을 교란한다. 축시는 간(肝)의 시간이다. 간은 이 시간에 혈액을 가장 활발히 정화하고 손상된 세포를 복구한다. 수면 중 간으로 가는 혈류량이 깨어 있을 때보다 약 40%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술을 마시면 다음 날 더 피곤한' 이유가 여기 있다. 간이 해독 대신 소화를 돕는 데 에너지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오전으로 넘어오면 진시(辰時, 오전 7~9시)는 위(胃)의 시간으로, 위산 분비와 소화 효소 활성이 하루 중 가장 높다. 아침식사를 거르면 위산이 점막을 자극해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시(巳時, 오전 9~11시)는 집중력과 창의력이 정점을 찍는 시간이다. 현대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오전 집중력 골든아워'가 바로 이 시진이다.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는 심장의 시간으로, 이 시간의 짧은 낮잠(20분 이내)이 오후 집중력과 심혈관 건강 모두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지중해식 시에스타 문화의 생리적 근거와도 맞닿아 있다. 신시(申時, 오후 3~5시)는 체온·근력·심폐 기능이 하루 중 최고점에 도달하는 시간이다. 스포츠과학 연구들이 이 시간대의 운동 효율이 가장 높다고 일관되게 보고하는 것은, 고대의 시진 배속과 정확히 겹친다. 그리고 해시(亥時, 오후 9~11시), 고대인들이 '인정(人定)'이라 불렀던 시간이 온다. 사람이 정착하는 시간, 만물이 고요해지는 시간이다. 멜라토닌 분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몸은 수면을 향한 준비를 마친다. 이 시간에 자극적인 영상과 야식으로 몸의 신호를 무시하는 현대인의 습관은, 고대의 시간표가 가장 경계했던 행동이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그 말의 의미는 달랐다. 그들에게 시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자연의 리듬을 읽고 그에 몸을 맞추는 것이었다. 분초를 쪼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지면 쉬고 계절이 바뀌면 몸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일주기 리듬 연구로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수여된 이후, 현대 시간생물학은 몸이 가진 시계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재발견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그 사실을 하늘을 보며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 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밤 11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 아침에 따뜻한 식사를 챙기는 것.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가장 중요한 일을 배치하는 것. 이것이 고대 천문학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하고도 실용적인 처방이다. 출처: [中國古代文化常識(중국고대문화상식)] 저: 王力 저작권자 © 메디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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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쓰는 편지
3월에 쓰는 편지
소나무 한의원 강솔 둘째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할 학교에서 2월에 커다란 사각봉투의 우편물이 왔다. <오거서 마음 편지>라는 제목의 안내문이었는데, 오거서란 다섯수레의 책을 뜻한다, 자녀가 대학에서 독서 문화를 체험하길 바란다, 부모가 편지를 써서 보낸다면 3월에 학교에서 그 편지를 전해주면서 책을 한권 주겠다 는 안내문과 함께 손 글씨로 편지를 쓸 수 있는 종이와 우편 봉투가 들어 있었다. 부모가 쓴 손 편지와 책 한권이라니. 나름 신선한 행사였다. 어떤 책을 줄지 궁금해서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종이를 앞에 두고 있으려니 20여년간 아이를 키우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일하러 나오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못 나가게 울부짖는 아이였다. 누구나 그렇지만 사춘기에는 사춘기의 사연이 있었다. 섬세하고 불안이 높은 아이에게 엄마로써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한참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엄마로써 아들한테 편지를 쓰려니 나 대학교 1학년때 딸로써 엄마한테 받은 편지가 떠올랐다. 1991년이니 벌써 35년전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집을 떠나 대학 기숙사에 갔다. 엄마가 없는 돈에 비싸고 가벼운 오리털 이불을 새로 사주었던 기억이 난다. 기숙사는 밤 10시에 점호를 해서, 10시까지 귀가 해야 했었다. 그때는 각 층 복도마다 전화가 한 대씩 있고, 기숙사에 있던 학생 중에 전화를 교환 해주던 학생이 있었다. 기숙사 대표번호로 전화를 하면 그 학생이 듣고 내용을 전달해주거나 2층 학생이면 2층 복도에 전화를 받을 수 있게 연결 해 줬던 것 같다. 3월에 신입생 환영회니 행사가 많았고, 향우회나 들어간 동아리들이 술을 엄청 많이 마시는 곳이었고, 나는 주는대로 술도 잘 받아 먹는 신입생이었다. 향우회였을까? 3월초 술을 마시다가 10시가 거의 다 되었는데, 다른 선배가 기숙사에 못간다고 연락을 하라고 하길래 전화를 했다. 못들어간다고. 그런데 그게 그 기숙사에선 절대 안되는 일이었던지 전화를 교환해주던 학생이 내가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내려갔다고 사감에게 전달, 사감은 집으로 전화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집에 계신 엄마는 얌전하던 딸이 대학에 가더니 기숙사에 거짓말을 하고 안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으신 셈이다. 다음날 기숙사에 갔더니 사감한테 엄청 혼이 났고 요주의 학생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전화를 교환해주던 학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뒤 집에서 편지를 받았다. 마치 인쇄한 듯 단정한 엄마의 편지. 왜 기숙사에 안 들어갔느냐는 내용은 없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내 딸을 믿는다. 어떤 일들이 있더라도 정직하게 성실하게 해내리라고 믿는다. 엄마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 구절이다. 태어나서 엄마에게 처음 받아보는 편지였다. 아마 그 뒤로도 엄마가 편지를 써서 보내신 일은 없었을 것 같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도 같다. 나도 그닥 곱게 자라지는 않았다. 엄마는 내가 사과를 밤톨처럼 깎는다고 등짝을 후려 치기도 하고, 엄마가 직장 다니고 자주 아파서 집안일도 꽤 많이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그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인데, 왜 본인 뜻대로 하지 않느냐고 잔소리 하거나 말을 심하게 하신 적은 거의 없다. 스무살의 3월에 받은 편지도 볼펜을 꾹꾹 눌러서 쓴, 힘이 들어간 글씨들 속에서, 기숙사 외박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편지의 아래쪽 끝에 내 딸을 믿는다. 너를 위해 기도한다. 라는 구절만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안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교사였던 엄마니까 오후에 학생들을 보내고 빈 교실에 앉아서 편지지를 꺼냈을지 모른다. 집을 떠나 보낸 딸이 걱정되고 불안했을 텐데. 최대한 말을 고르셨겠지. 하고 싶은 말이 많으셨을텐데, 왜 기숙사를 외박했느냐고 야단치고 길게 말하는 대신 엄마는 내 딸을 믿는다. 너를 위해 기도한다. 라는 말을 선택하셨다. 그런데 지난 30여년의 내 삶을 돌이켜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내려는 마음이 늘 있었다. 엄마의 그 편지 문구는 내 무의식 아래 늘 따라다녔던게 아닐까. 아이에게 편지를 쓰기가 더 어려웠다. 이 편지를 내 아들도 35년 뒤까지 기억할지도 모른다고 말을 한참 고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혼자 웃었다. 이것도 욕심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나도 결국은 그렇게 썼다. <아들아 너를 믿는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내기를 바란다. 너를 위해 기도 한다.> 너를 위해 기도한다.......내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진심을 담은 기도일 것이다. 3월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1월보다 3월이 더 푸릇 푸릇 새로운 시작인 것 같다. 아들에게 편지를 쓰려다 엄마에게 편지를 받던 스무살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스무살일 때 이렇게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30년 뒤는 상상할 수 없었다. 뚜벅뚜벅 걸어서 이만큼 왔다. 이번 3월에는 나에게 쓰는 편지를 보내보면 어떨까. 30년 뒤에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 기도한다... 라고 마무리하는 편지를 써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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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의료체계 속 만성질환 관리와 한의학의 역할 탐색
라오스 의료체계 속 만성질환 관리와 한의학의 역할 탐색
대만드(대신만나드립니다) 대구한의대학교 한의학과 이현서 나는 최근 라오스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비교적 큰 도시로 알려진 루앙프라방조차 산길이 많아 접근성이 떨어졌고, 환자들은 문화적 이유로 자신의 증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여러 동남아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처럼 중풍과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 환자가 많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때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질병이 많다’는 사실 자체라기보다, 이러한 질환들이 충분히 관리되지 못한 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왜 이러한 건강 문제가 반복되는지’, 그리고 ‘이와 같은 환경에서 어떤 의료적 접근이 보다 적절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라오스의 만성질환 문제는 통계적으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WHO에 따르면 30–79세 성인에서 고혈압 유병률은 약 29%에 이르지만, 조절률은 14%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히 환자가 많다는 것을 넘어, 실제로 질병이 적절히 관리되는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질환 증가로 이어지며, 비감염성 질환이 전체 사망의 약 60%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로 연결된다. 지표 값(연도) 인구 7,664,993명 (2023) 사망원인 비중 뇌졸중 13.4%, 허혈성심장질환 12.5% (2021) 사망의 NCD 비중 63% (2021) 뇌졸중 사망률(10만명당) 여성 87.1, 남성 83.5 (2021) 고혈압(30–79세) 유병 29% / 인지 45% / 치료 32% / 조절 14% 대사 위험요인(STEPS) 고콜레스테롤: 총 23.3%·남 15.4%·여 28.6% 혈당상승: 총 7.4%·남 5.8%·여 8.5% 출처: WHO 보건의료체계는 중앙–주–군–보건소로 이어지는 다층 구조를 갖고 있으나, 산악지형과 교통 인프라의 한계, 언어 다양성과 같은 구조적 제약이 의료 접근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더해 실무적으로는 데이터 체계의 단절, 표준 부재, 수기 중심 업무가 지속되고 있어 만성질환 관리의 핵심인 환자 등록, 추적 관리, 복약 순응, 합병증 예방의 흐름이 충분히 유지되지 못한다. 특히 만성질환은 환자의 증상 인식과 행동 변화가 중요한데, 현장에서 느낀 ‘증상을 늦게 표현하는 경향’은 이러한 관리 과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라오스의 의료 문제는 단순히 질병의 존재가 아니라, 질병이 연속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가깝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라오스 정부는 Digital Health Strategy 2023–2027을 수립하였다. 이 전략은 인력, 거버넌스, 상호운용성 표준, 애플리케이션, 인프라라는 다섯 축을 중심으로 37개의 전략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약 900만 달러 규모로 설계되어 있다. 이 전략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보건정보체계를 기존의 프로그램별 단절 구조에서 국가 단위의 통합된 전략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 있다. 특히 만성질환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전략은 첨단 기술 도입 그 자체보다 환자 등록, 혈압과 혈당과 같은 객관적 지표의 정기적 기록, 그리고 중단되지 않는 추적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적인 관리 구조’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단일 진료행위가 아닌 연속적인 관리의 축적을 통해 결과가 달라지는 만성질환의 특성을 고려한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의학, 그리고 한의학의 역할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다. 라오스에서는 전통의학이 이미 널리 활용되는 보건 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전통의약품 등록과 같은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어 있다. WHO 역시 전통,보완의학을 만성질환과 고령화 대응에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평가하면서도, 안전성과 품질, 효과에 대한 규제와 데이터 기반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한의학이 이와 같은 환경에서 의미 있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치료 적용을 넘어, 표준화와 안전성 확보, 그리고 데이터 축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임상 영역에서 보면, 고혈압 관리에서 침 치료는 약물치료의 보조적 접근으로서 일정한 가능성을 보여왔다. 일부 메타분석에서는 침 치료를 병행했을 때 수축기혈압이 평균 약 7.47mmHg 추가로 감소한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또한 수축기혈압이 10mmHg 감소할 경우 뇌졸중 위험이 약 27%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혈압을 일정 수준 낮추는 개입은 공중보건적 측면에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라오스처럼 고혈압 유병률은 높지만 조절률이 낮은 환경에서는, 침 치료와 생활습관 관리, 복약 순응을 함께 고려한 접근이 조절률을 높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한약이나 전통의약품의 활용에 있어서는 공급망과 규제 체계가 중요한 전제가 된다. 라오스는 전통의약품 등록 규정을 통해 생산과 유통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적용을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적 틀 안에서 품질과 안전성, 표준화를 충분히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디지털 헬스 시스템과 연계하여 처방, 복용, 이상반응과 같은 정보를 기록하고 축적하는 과정이 병행된다면, 전통의학 역시 보다 체계적인 보건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해보면, 라오스에서의 접근은 거대한 변화보다는 작고 점진적인 시도가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등록 기반 관리, 정기적인 혈압 측정과 추적, 그리고 보조적 치료 접근을 결합한 소규모 프로그램을 통해 효과를 검증해 나가는 방식이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라오스에서 마주한 의료 현실은 단순히 의료 인프라의 부족으로만 설명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보다는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연결하는 구조의 부재가 더 근본적인 문제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디지털 헬스 전략과 전통의학, 그리고 한의학은 서로 만날 수 있는 접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치료를 선택하느냐보다는, 환자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라오스의 의료 문제는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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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가 천마를 캐러 간 이유
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가 천마를 캐러 간 이유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지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때 소년은 활을 집어 들었다. 자기 앞에 서 있는 거대한 호랑이를 노려본다. 아마도 수양대군의 모습이 겹쳐 보였으리라. 부들부들 떨며 화살을 겨눈다. 숨을 조여 오는 두려움에 나약한 자신을 향한 분노를 얹어 화살을 날린다. 화살은 호랑이를 향해 날아가 명중했고 소년은 기절했다. 깨어났을 때 그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사진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한 장면이다. 단종이 청령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나날들을 상상력을 더해 그려낸 이 작품은 현재 1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외로웠던 비운의 왕 단종 곁을 끝까지 지킨 엄흥도는 실존 인물로, 아무도 거두지 않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 지냈다고 전해진다. 500년 만에 전 국민이 단종의 장례를 치른 것 같다는 한 관람객의 평처럼 “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는 그의 말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영화 중반, 엄흥도는 악몽과 불면에 시달리는 단종을 위해 ‘천마’를 캐러 간다. 한의사라면 자연스레 시선이 머무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이 천마는 어떤 약일까. 천마는 난초과 식물인 Gastrodia elata의 뿌리줄기로 [동의보감]에 “主諸風濕痺 四肢拘攣 小兒風驚癎 治眩暈風久癎服氣”라 기록되어 “온갖 풍습비, 사지에 경련이 이는 것과 소아의 풍간과 경기에 주로 쓴다”라고 되어 있다. 많이 놀라거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때 복용하는 대표적인 약 우황청심원에도 들어있으며 평생 어지럼증에 시달렸던 영조는 자음건비탕이라는 처방에 천마를 첨가하여 자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정말 천마로 단종의 불면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한의학에서는 불면을 단일한 병으로 보기보다 다양한 병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결과적 증상으로 인식한다. [동의보감]에서도 불면은 하나의 질환으로 분리되어 다뤄지기보다 심, 신, 몽, 잡병 편 등 다양한 조문 속에서 등장하며 원인에 따라 심비양허, 심담허겁, 간기울결, 음허화왕, 담열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따라서 특정 약재 하나로 해결하기보다 체질과 병인을 함께 살피는 맞춤 처방이 중요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들이 수면장애에 시달렸던 기록들이 남아있다. [왕의 한의학]의 저자 이상곤 한의사에 따르면 승정원일기에만 침수(寢睡)라는 단어가 2만 7210회나 나올 정도라 한다. 이는 임금의 수면 상태가 단순한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국정 전반과 직결된 사안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40대 후반 수준에 머문다. 끊임없는 정무와 권력 다툼 속에서 쌓인 극심한 스트레스는 수면을 방해하고 전반적인 건강을 해쳤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들이 이른바 울화병에 해당하는 신체적 증세를 보인 사례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선조는 “내 병이 다시 도져 고질이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심화가 가장 치성하여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상태를 직접 언급한다. 서자 출신이라는 컴플렉스와 사림과의 갈등, 임진왜란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소화불량과 이명, 편두통 등에 반복적으로 시달렸으며 그 원인이 스트레스에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단종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자신을 지켜주던 이들을 모두 잃고, 믿었던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유배까지 온 열일곱의 소년. 단종이 겪었을 심리적 충격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사진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단종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에는 특정 질병에 대한 상세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수척해진 모습과 기력 저하, 깊은 불안과 슬픔에 잠긴 상태였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단종이 영월군 객사인 동헌에서 머물 때 지었다는 아래 시는 그가 견뎌야 했던 길고 고통스러운 밤, 곧 불면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一自寃禽出帝宮 원통한 새 한 마리 궁궐에서 나온 뒤로 孤身隻影碧山中 외로운 몸 외딴 그림자 푸른 산속을 헤맨다 假眠夜夜眠無假 밤마다 잠을 청하나 잠들 길 없고 窮恨年年恨不窮 해마다 한을 끝내려 하나 끝없는 한이네 聲斷曉岑殘月白 산봉우리에 울음소리 끊어지니 새벽달이 비추고 血流春谷落花紅 봄 골짜기에 피 흐르니 붉은 꽃이 떨어진다 天聾尙未聞哀訴 하늘은 귀 먹어서 하소연 못 듣는데 何奈愁人耳獨聰 서러운 몸 어쩌다 귀만 홀로 밝은가 (출처: 나무위키) 한의학적으로 본다면 그의 상태는 심한 스트레스와 억울한 마음으로 인한 간기울결, 두려움과 공포로 인한 심담허겁, 여기에 식사 부진으로 인한 비허까지 겸한 복합적인 양상에 가까웠을 것이다. 불면뿐 아니라 심계, 정충, 두통, 흉민 (가슴 답답함) 등 다양한 증세를 겸했을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상태는 단순히 한 가지 약재로 다스리기보다는, 기울을 풀고 심신을 안정시키며 기혈을 보하는 방향의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시호, 향부자와 같은 이기약에 더해, 복신, 원지처럼 심신을 안정시키는 약재, 그리고 용안육, 당귀, 백작약 등 보혈약을 함께 배합하는 방식이다. 물론 엄흥도도 천마 하나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의사의 눈으로 보면 엄흥도가 천마를 캐러 나섰다는 설정은 단순한 약재 채취를 넘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천마는 위에 언급했다시피 간풍을 식히고 놀람과 경기를 가라앉히는 효능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에 놓인 어린 왕의 심신을 조금이나마 안정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투영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진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많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자기에게 해가 미칠까 두려워 그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어린 소년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의학은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만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인생을 본다. 엄흥도가 캐러 간 천마에 단종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었듯, 내가 내리는 처방이 그의 마음에 온기를 더했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먼저,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을 지켜주는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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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가 뭐 하는 사람인데?
한의사가 뭐 하는 사람인데?
이천시 남부통합보건지소 공중보건의 김제관 지방의 보건지소 치고는 많은 수의 환자가 오는 곳에서 일하다보니 여느 공보의들보다는 많은 환자들을 봤다. 최근에는 지인들의 치료 요청도 잦아 다양한 케이스를 본 것 같다.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감사해하는 경우도, 신기해하는 경우도 있다. 지인이니까 싸게 줄 수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약값으로 십수만원 소비하는 게 마냥 싸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텐데 본인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한약을 요청하기도 한다. 한의사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일들이지만, 또 혹자는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최근 들어 드는 생각들을 몇 가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런 것도 한의학으로 치료가 되는거야? 생각보다 사람들이 한의학을 잘 모른다. 한의원에 왜 가는지도, 한의사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지인의 골프엘보를 치료하면서 들었던 말은, 이런 근육통이나 관절통으로 한의원을 갈 생각을 못해봤다는 것이었다. 사실 정형외과에서는 근육보다는 뼈가 메인이 되지만 우리는 대충 근골격계 전반을 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편 문외한의 입장에서 ‘한의원’이라는 단어를 듣고 근골격계 질환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미 한의원에 다니던 사람들이나 아는 거지 생각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가면 괜히 비싼 보약이나 먹으라고 할 것 같은 무서운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의원 창문을 봐도 ‘교통사고, 추나’등은 많이 쓰여 있지만 근육통, 관절통, 두통, 생리통 등이 쓰여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한의학계 차원에서의 홍보, 한의사 개인으로서의 마케팅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한의사가 수술은 못 하지만 또 생각보다 치료 가능한 질환군이 넓지 않은가? 한약은 비싼 거 아닌가? 한약값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90년대에도 한 제에 30만원이었다고 하니 그 당시의 GDP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때보다 가격이 오르기야 했지만 2002년도에 겨우 1인당 총소득이 만 달러를 넘은 것을 생각하면 삼만 달러대 중반을 돌파한 지금 소득 대비 가격이 매우 낮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약의 수요는 매우 줄었다. 국민 건강수준이 올라가고 영양상태도 좋아졌으며 의학지식에 접근하기가 쉬워진 탓일까? 혹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비싼 가격에 비해 적절한 효과를 느끼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요즘의 한약 값이 그 시절보다 오히려 저렴할 수도 있다. 한약이라고 하면 오로지 원내에서 탕전한 것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짜먹는 한약도 나왔고, 첩약의 건보 적용 시범사업도 진행 중이다. 한의원과는 관계가 없지만 약국에서도 한약 기반의 약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나도 몇 달째 기침을 달고 살다가 삼소음 보험제를 열흘쯤 먹고 지금은 기침을 하지 않는다. 저렴하게 훌륭한 한약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시대다. 훌륭한 보완대체재 약간은 서글픈 얘기일수도 있지만 한의학은 명백한 보완대체의학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학의 빈자리를 꽤 훌륭하게 채울 수 있다. 손목이나 팔꿈치 통증으로 정형외과나 통증의학과에 수도 없이 내원하는 환자를 조금 더 광범위한 침치료 몇 번으로 낫게 할 수 있다. 심지어 약침에 추나까지 다 시행하더라도 주사 한 대 값보다 저렴할 수 있다. 힘줄의 염증부위에 어떤 약액이 들어가는지보다 관련 근육군의 이완이 더 중요한 질환인 경우 더 싸고 효율적인 치료방법인 것이다. 또 시험관 시술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내는 부부에게 한약 두 제 정도로 아기천사를 선물해줄 수도 있고, 내시경이나 혈액검사상 아무 문제가 없는 소화불량, 만성피로 환자에게 큰 돈 들이지 않고 편안한 속과 활기찬 하루를 살아가게 해줄 수도 있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현대의학은 이제 우리 삶에서 사라진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뭐든 그렇듯이 완벽하기는 어렵다. 지식의 한계일 수도, 효율이나 경제성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한의학은 일차의료의 한 축으로서, 현대의학의 빈자리를 채우는 보완대체의학으로서 우뚝 설 수 있다. 개인 차원에서의 연구와 노력, 그리고 학계 차원에서의 홍보와 정책 참여가 적절히 행해진다면 가성비 좋은 국민건강 증진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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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일 의학 교류의 중심, ‘조선의 반도체’ 인삼의 비밀을 풀다
18세기 한일 의학 교류의 중심, ‘조선의 반도체’ 인삼의 비밀을 풀다
대한공중보건한의사협의회 경상남도 대표 김태준 본문: - 17세기판 무역 전쟁: 조선의 인삼 수출 통제(禁蔘)와 일본의 밀수 대작전 - 통신사 의학문답으로 본 치열한 '자원 무기화'와 한일 정보전 - 효능 중심의 조선 vs 명물학적 실증주의의 일본, 극명하게 엇갈린 본초학의 궤적 설명=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 국서데이터베이스) 최근 주식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연일 상승 랠리를 펼치며 경제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반도체 패권이 한 국가의 명운을 결정짓는 시대, 세계 각국은 첨단 기술 유출을 막고 공급망을 쥐기 위해 치열한 무역 전쟁과 수출 통제를 불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18세기 조선의 최고 하이테크 수출품이자 전략 물자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삼(人蔘)’이다. 과거 한의학계에서 발굴 및 번역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조선통신사 의학문답 기록과 관련 사료들을 살펴보면, 당시 조선 인삼을 둘러싼 일본의 열광적인 관심과 양국 간의 살벌한 '무역 전쟁'의 실체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17세기판 반도체 수출 통제: 삼도구 사건과 조선의 '금삼(禁蔘) 정책' 오늘날 강대국들이 희토류나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며 제재를 가하듯, 17세기 후반 조선 역시 인삼 수출을 전면 차단한 적이 있었다. 발단은 1685년, 조선 채삼인(採蔘人)들이 인삼을 캐기 위해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들어갔다가 청나라 관리를 조총으로 쏘아 상해를 입힌 '삼도구(三道溝) 사건'이었다. 외교적 분쟁을 우려한 조선 조정은 즉각 북쪽 국경의 인삼 채취를 금지함과 동시에, 이듬해인 1686년부터 동래 왜관을 통한 일본으로의 인삼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금삼(禁蔘) 정책'을 단행했다. 공식적인 수입로가 막히자 일본 대마도번은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조선 인삼은 일본 내 의약품 수요를 감당하는 것을 넘어, 대마도 도주가 에도 막부에 반드시 바쳐야 하는 핵심 진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진상품이 끊겨 막부의 눈밖에 나면 번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었기에 대마도번은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외교 사절인 재판차왜(裁判差倭) 히라타 쇼자에몬은 이례적으로 무려 4년이나 왜관에 체류하며 조선 측에 수출 금지를 풀어달라고 집요하게 매달렸다. 동시에 이들은 외교적 해결에만 기대지 않고,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왜관의 역관들을 매수하여 한밤중에 수백 근의 인삼을 몰래 빼돌리는 등 대규모 밀무역을 조직적으로 자행했다. 이는 현대의 수출 제재망을 뚫고 첨단 부품을 밀수하려는 국가 간의 암투를 방불케 한다. 자원 안보를 향한 일본의 집념: 국산화 야망과 명물학의 태동 일본이 인삼의 '국산화'에 사활을 걸었던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인삼 수입으로 인한 막대한 은(銀)의 유출을 막으려는 경제적 목적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조선의 일방적인 금수 조치(수출 통제)에 휘둘리지 않고 자국의 '의료 안보'를 지키기 위한 절박함이 작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절박함은 초기에는 눈물겨운 '대용품 찾기'와 '가공' 노력으로 나타났다. 1711년 신묘사행 당시 일본 의사 기타오 슌포(北尾春圃)는 사삼(沙蔘) 실물을 들고 와 조선 의관에게 보여주며 사삼이 인삼의 대용품이 될 수 있는지 캐물었다. 또한 1748년 무진사행 때는 카와이 슌코(河春恒)가 일본산 인삼의 쓴맛을 감추기 위해 감초물이나 꿀물에 담가 단맛이 나게 가공하여 조선 인삼의 대용품으로 쓰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대용품이나 가공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결국 이들의 집념은 본초를 대하는 양국의 관점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조선의 의학계가 약재의 '임상적 치료 효능'에 집중했다면, 일본은 약재의 명칭, 유래, 산지, 형태, 감별 등을 집요하게 따지는 명물학(名物學)적, 박물학(博物學)적 관점으로 빠져들었다. 어떻게든 조선 인삼의 생태와 재배 노하우를 알아내기 위해, 통신사를 맞이한 일본 의사들은 옛 본초서의 기록을 근거로 삼아 인삼이 자란다는 '가수나무'의 형태까지 꼬치꼬치 캐물었을 뿐 아니라, 자국에서 채취한 가짜 인삼을 들고 와 진품 여부를 끈질기게 감별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로 겐죠(野呂實夫) 등 일본의 본초학자들은 아예 60여 종의 동식물 목록을 들고 와 형태와 산지를 캐묻기도 했다. 물론 첨단 바이오 자원의 유출을 막으려던 조선 의관 조숭수(趙崇壽) 등은 "우리는 의학을 논하는 사람이지 채약인(採藥人)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고, 민간에서 은밀히 인삼 재배가 시작되고 있었음에도 "인삼은 영물이라 인위적 재배가 불가능하다"며 고도의 '정보 방어전'을 펼쳤다. 그러나 막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일본의 집념은 결국 결실을 보았다. 에도 시대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는 1720년대에 도쿄 고이시카와(小石川) 등 대규모 국립 약용식물원(사진2)을 조성했고, 일본 학자들은 1728년경 닛코(日光) 등지에서 조선 인삼 종자를 직접 시험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본초학자들은 책상에서 의서를 외우는 대신, 식물원에 나가 흙을 만지고 재배하면서 서양의 린네(Linnaeus)에 버금가는 실증적 식물분류학을 태동시킨 것이다. 현재 일본의 약학대학들이 부속 '약용식물원(藥用植物園)'을 필수로 갖추고 학생들이 생약을 직접 재배, 관찰하는 전통은 수백 년 전 조선의 무역 통제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에도 시대 본초학자들의 뼈저린 유산일 것이다. 설명=京浜にけ, CC BY 3.0, 위키미디어 공용) 18세기의 엇갈린 궤적, 현대 한의학과 캄포(漢方)의학의 차이를 빚어내다 18세기 조선통신사를 무대로 펼쳐진 인삼 전쟁과 본초학의 엇갈린 행보는 단순한 과거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임상 효능과 인체 내부의 병리적 원리 탐구에 집중했던 조선의 학풍은 약재의 외형과 산지를 파고든 일본과 확연히 달랐다. 조선 의학계는 『동의보감』 등의 종합 의서를 바탕으로 질병의 원인과 처방을 체계화하며 정교한 변증(辨證) 체계를 구축했고, 이러한 학문적 토대는 19세기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으로 이어져, 환자 개개인의 장부 대소와 체질적 특성까지 깊이 있게 고려하는 고도화된 맞춤 의학을 꽃피우게 했다. 반면, 인삼을 국산화하기 위해 토양을 분석하고 종자를 연구했던 일본의 명물학적 집념은 약재의 실증적 규격화와 식물분류학으로 이어져, 현재 일본 캄포(漢方)의학 특유의 규격화된 생약 연구와 제약 산업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결국 양국의 치열했던 정보전은 각자의 환경에 맞게 전통의학을 진화시킨 원동력이었다. 300년 전에는 서로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평행선을 달렸지만, 이제는 각자 발전시켜 온 두 의학의 강점과 궤적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의 기록이 한국의 한의학과 일본의 캄포의학이 왜 지금과 같은 차이를 가지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역사적 거울이 된 셈이다. 참고문헌이해진, 「17세기 후반 조선의 禁蔘 정책과 대일 인삼 무역」, 『사총(史叢)』, 2024. 차웅석, 「18세기 조선통신사를 통한 한일의학문화교류」, 『동의생리병리학회지』, 2006. 조기호, 「근세일본 한방의학 산책」, 물고기숲, 2025. 저작권자 © 메디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