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한의대학교 한의과대학 문경록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작품의 시작과 동시에 현학적이고 알쏭달쏭한 말을 늘어놓으며 작품에 얼굴을 비춘다. 그는 아내에게 가사와 경제활동을 전적으로 의존하며 아내가 차려 주는 밥을 먹고 아내가 주는 돈만을 받으며 이불 속에서 이런저런 사색을 하다가 잠들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자신이 선언했듯 그야말로 ‘박제’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한 변덕으로 밤 외출을 다녀온 그는 아내와 어떤 남자, 혹은 ‘손님’이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아내의 비밀 아닌 비밀을 목격한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아내에게 지폐 한 장을 쥐어 준 후 쓰러지듯 잠든다. 어째서인지 그런 행위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그는 밤 외출을 다시 나갔다가 비를 맞은 채 아내가 ‘손님’과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에 들어가고, 이튿날 심한 감기에 걸린다. 아내는 그에게 아스피린이라며 약을 먹이고, 그는 아내의 말을 신뢰해 약을 먹고 몇날 며칠을 내리 잠만 잔다. 하지만 아내가 외출한 사이 심심풀이로 아내의 화장대를 뒤지던 그는 아스피린이 아닌, 최면제인 아달린 갑을 발견한다. 그는 아내가 정말 자신을 속이고 아달린을 먹인 것인지, 아니면 아내에게 걱정이 있어 아내가 아달린을 쓴 것인지 한참 갈등하다 충동적으로 아달린을 입안에 털어넣고 어느 벤치에서 한참 잠든 후 휘청이며 귀가한다. 아내와 ‘손님’이 함께 있는 현장, 그것도 아내가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아내는 그에게 밤새워 도둑질이나 계집질을 하러 다니냐며 분노하지만, 그는 반항해 볼 생각을 금새 접고 무기력하게 집을 나서 이곳저곳을 방황하다 미스코시 백화점 옥상에 다다른다. 그는 ‘우리 부부는 태생부터 절름발이이다. 굳이 그 행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업다. 그저 절름발이로 살아가면 될 뿐이다.’ 라고 사색하면서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발길을 망설인다. 그때 그의 귀에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불현듯 그는 잃었던 과거의 야망과 생명력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외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에 지식인들이 느낀 무력함,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박제’와도 같은 화자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물질과 현실을 상징하는 ‘아내’에 의해 현실에서 유리되어 무기력한 사색만을 이어가던 화자의 모습은, 일제의 치하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순응하거나 아예 전향해 버리던 당대 지식인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랬던 화자가 결말부에서 자신의 이성을 깨우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의식의 각성을 이루며, 삶의 의지를 되찾고 다시 한 번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날아오르겠다 결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대 지식인들뿐 아니라 작가 스스로에게도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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