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들과 달리기를 해요. 넓고 넓은 들판을 달려요.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어요. 친구들은 모두 저만큼 앞서 달려가는데, 내 몸은 돌덩이처럼 무거워요. 겨우 겨우 다리를 움직이지만 점 점 더 무거워져서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가고 있어요. 너무나 답답해요.
“같이 가자! 승민아, 인겸아, 나도 데리고 같이 가!”
친구들이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아요. 어느 새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해요. 비가 올 것만 같아요.
‘쏴아!’
소나기가 내려요. 내 몸이 다 비에 젖어요. 이상하게 다리 사이만 더 젖는 것 같아요. 허벅지와 아랫배가 비에 젖어서 뜨끈해요.
“헉!”
뜨끈하고 축축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보니 꿈이었어요.
“앗,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오줌을 쌌어요. 나는 열 살인데, 큰일이에요.
“성진아! 아직도 안 일어났어? 얼른 씻고 나와서 밥 먹으라니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요. 시계를 봤어요.
“지각이다!”
큰일이에요.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어요. 아까 엄마가 깨우셨을 때 일어났어야 했어요. 오 분만 더 자려고 했는데,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일어났어요. 8시 30분까지 학교에 가야 하는데, 오줌을 싸서 젖은 옷과 이불은 어떻게 하지요?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서랍에서 깨끗한 옷으로 꺼내 모두 갈아입었어요. 몸에 오줌이 뭍은 게 찝찝했지만 씻을 시간은 없어요. 침대 옆에 있던 물티슈로 양쪽 허벅지와 배만 대충 슥 슥 닦았어요.
주방 쪽을 망을 봐요. 다행이 내 방은 현관 문 앞 쪽이라서 엄마 모르게 학교에 갈 수 있어요. 내 머릿속엔 온통 오줌을 싼 것을 엄마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학교에 지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뿐 이었어요. 조용히 신발을 신었어요.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기가 무섭게 부리나케 현관문을 열고 뛰어나갔어요.
“밥도 안 먹고 가?”
엄마의 외침이 들렸어요.
“네! 늦었어요!”
나는 얼른 대답을 하면서 현관문을 닫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속해서 눌러 댔어요. 혹시라도 엄마가 따라 나오시기 전에 얼른 내려가야 되요.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을 들키면 안돼요.
“휴! 다행이다.”
무사히 엄마에게 잡히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지금 가면 지각하지 않고 교실까지 들어갈 수 있어요. 나는 열심히 걸어갔어요. 뭔가 허전해요. 아마 아침밥을 먹지 않아서 일거에요. 교문이 보여요.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자꾸 나를 쳐다봐요. 이상했어요. 학교 앞 횡단보도 앞에 섰어요.
“너는 책가방은 안 메고 학교에 가니?”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말했어요.
“으악!”
나는 책가방을 메고 있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지? 지금 교실로 들어가지 않으면 지각인데, 책가방을 가지러 집에 되돌아갈까? 안 돼. 그러면 지각도 하고, 엄마에게 오줌 싼 것도 들키고 모든 게 엉망이 돼.’
나는 지각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책가방이 없어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다시 교실로 향했어요. 책가방이 없는 걸 몰랐을 땐 그저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 뿐 이었는데, 책가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부터는 마치 도둑질을 하는 것 마냥 가슴이 두근 두근 해요.
나는 쭈뼛거리며 교실에 들어갔어요. 다행히 지각을 하지 않았어요. 아무렇지 않게 내 자리에 앉았어요. 친구들을 둘러보아요. 여기저기에서 친구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어요.
“승민아, 너 뭐해?”
“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뭐 하는데에~ 나도 좀 알려줘!”
“아, 진짜! 들켰잖아. 성진이 너, 선생님한테 내가 학교 와서 일기 쓴 거 이르면 안 돼!”
“아, 맞다! 일기! 어떻게 하지? 나 진짜 일기 다 썼는데!”
책가방을 놓고 왔으니, 당연히 일기장이 없어요. 호랑이 같은 선생님이 일기장을 놓고 온 것을 용서하실 리가 없어요. 분명히 일기를 썼는데, 놓고 왔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어주지 않으실 거에요.
나는 교실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아무래도 가방을 가지러 집에 가야겠어요.
“성진아! 너 어디가? 금방 선생님 오실 시간이잖아!”
반장인 희진이가 말했어요.
“잠깐만 다녀올게!” “어딜 가는데? 선생님 오시면 뭐라고 말해?”
희진이는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어요.
“어…… 일기장, 일기장을 집에 놓고 왔어.”
“야, 일기장을 놓고 왔다고 집에 다시 가는 사람이 어딨냐? 선생님 오시면 허락을 받고 가야지!”
“허락?”
허락이라는 말에 나는 겁이 났어요. 선생님께서 일기장 때문에 집에 다시 가는 걸 허락하실 것 같지 않아요. 그렇다고 책가방을 놓고 왔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 는 없을 것 같아요.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았어요. 집에 다시 가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아요.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불안한 마음에 오늘의 시간표를 확인했어요.
“국어, 사회, 영어…… 헛! 사회다!”
두 번째 시간이 사회에요. 오늘 사회시간에는 모둠별로 우리 마을에 대한 발표를 한댔어요. 우리 모둠에서 발표하려고 준비한 자료는 내가 가지고 있었어요. 책가방에 들어 있어요. 큰일이에요.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성진이 너 자꾸 왜 그래? 왜 일어났어?”
반장인 희진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어봐요.
“아, 그게 있잖아…… 희진아, 오늘 사회시간에, 우리 마을에 대해 조사한 자료, 발표 하겠지?”
“당연한 거 아냐?”
“그래, 당연하네……”
어떻게 하죠? 나 때문에 우리 모둠은 발표를 못하게 될 거에요. 나를 믿고 자료를 맡긴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어요. 나는 엉거주춤하게 자리에 서 있었어요.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어요.
“너 혹시 우리 자료 놓고 왔어?”
짝 수빈이가 나를 빤히 보아요.
“아, 아니, 아니.”
나는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어요. 평소의 수빈이의 성격으로 볼 때, 내가 자료를 놓고 온 것을 알면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요. 나는 수빈이를 화나게 하느니 차라리 집에 가서 엄마에게 오줌 싼 것을 야단맞겠어요.
수빈이가 계속 나를 빤히 봐요. 그 눈빛이 경멸하는 듯 한 눈빛으로 바뀌었어요. 나는 긴장이 되었어요.
“왜애…… 왜?”
“눈꼽 봐. 드러워.”
수빈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어요. 지난번에 내가 실수로 냄새가 고약한 방귀를 뀐 후로, 수시로 트집을 잡아 나를 더럽다고 무시하는 수빈이에요. 나는 얼굴이 벌게지는 것 같았어요. 화끈화끈 뜨거워지는 게 느껴져요. 아침에 세수도 양치질도 하지 못하고 집을 나온 게 생각이 났어요.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 게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다시는 수빈이 앞에서 더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었는데, 오늘도 내 자존심은 무너지고 말았어요.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뛰어 나갔어요. 얼굴이라도 씻어야겠어요.
“김성진! 너 또 어디가!”
뒤에서 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요.
“화장실!”
외치면서 교실 문을 막 여는데, 내 앞에 선생님이 서 계세요.
“김성진, 어디가?”
레이저 광선을 쏘는 것 같은 담임 선생님의 눈빛이 내 얼굴에 꽂혔어요.
“화…… 화장실요……”
“급해?”
“아…… 아니요.”
“자리에 앉아.”
“네……”
“진짜로 안 급해?”
“네? 네에……”
담임 선생님의 레이저 광선 같은 눈빛을 보면, 거짓말은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어요. 나는 눈을 막 비비며 도로 자리에 앉았어요. 눈곱이 다 떨어졌는지 거울이라도 보고 싶었어요. 수빈이랑 눈이 마주칠까봐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 있어요. 입가에 침자국은 없는지 머리가 엉망은 아닌지 걱정이 되요. 집에서 거울 한 번 보고 나올 시간은 충분히 있었는데, 오줌을 싼 걸 들킬까봐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요. 혹시 오줌이 뭍은 몸을 깨끗하게 씻지 않아서 지린내가 나진 않겠죠?
그냥 엄마에게 오줌을 쌌다고 고백하고, 지각을 하더라도 차분히 등교준비를 하고 나왔어야 했어요. 아니, 천천히 씻고 책가방을 메고 나왔어도 오줌 싼 걸 엄마에게 들키진 않았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엄마는 아침에 내 방에 들어오지 않으시거든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요. 시간을 되돌린다면, 엄마가 깨웠을 때 일어났을 거에요. 그렇다면 늦잠을 자면서 이불에 오줌을 싸지도 않았을 거에요. 모든 걸 되돌릴 수는 없는 걸까요?
선생님의 말씀이 하나도 들리지 않아요. 내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집에 다녀와야 할까 하는 생각 뿐 이에요. 또 어떻게 하면 집에 도로 가서 엄마에게 혼나지 않고 책가방을 가지고 나올 수 있을까요?
“자, 일기장 제출하고, 9시 까진 5분 남았으니까 화장실 다녀오도록! 김성진!”
“네? 네?”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대답했어요.
“화장실 다녀오라고, 김성진.”
선생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내가 일기장을 안 가져왔다고 해도, 우리 모둠 자료를 집에 두고 왔다고 해도, 나를 보며 저렇게 웃어주실 순 없겠죠? 절대로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죠?
친구들은 앞으로 나가서 일기장을 제출하고 있어요. 나는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거울을 봤어요. 눈곱이 눈 옆에 누런 얼룩이 되어 크게 말라붙어 있어요. 내가 봐도 더러웠어요. 나를 무시하던 수빈이의 표정이 떠올랐어요.
“쏴아”
물을 틀어 세수를 하고, 양 손을 모아서 물을 받아 입에 넣고 가글도 했어요. 양치질도 안한 내가 입을 열고 말을 하면 수빈이는 양쪽 입가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 거에요.
‘네 입에서 똥냄새 나. 말하지 마!’
나는 수빈이의 목소리를 벌써 들은 것만 같아서 기분이 나빠졌어요. 우리 모둠의 발표 자료를 집에 두고 왔다고, 그래서 사회시간에 우리 모둠은 발표를 할 수가 없다고 말하면 수빈이가 나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어요. 나의 실수로 우리 모둠 전체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수빈이가 나를 무시하는 거에요.
이제 교실로 들어가서 선생님께 책가방을 놓고 왔다고 솔직하게 말을 할 거에요. 나는 한 번도 책가방도 안가지고 학교에 간 아이의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웃을 거에요.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창피해서 얼굴은 미리 벌게지고 있어요.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교실로 돌아가고 있어요. 세수를 해서 얼굴에 흐르던 물방울은 화닥 화닥 뜨거워진 얼굴의 열기로 타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복도 창문이 열려 있어요. 창밖으로 운동장이 보여요. 2층인데도 생각보다 운동장이 가까워 보이는 게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교실 앞 복도 창가에 서서 창밖을 내려다보았어요. 창문 바로 아래에는 화단이 있어요. 누군가가 물을 뿌렸는지 화단의 흙은 젖어 있었지만, 뛰어내리면서 조절을 잘 하면 화단 바깥쪽으로 무사히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뒤를 돌아보았어요. 아무도 없어요. 순간 내 머릿속엔 얼른 뛰어내려서 집에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어요. 나는 잽싸게 창틀로 올라가서 온 힘을 다해 멀리 뛰어내렸어요.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이었어요. 갑자기 발 밑이 미끄러우면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어요.
“아악!”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화단에 누워있었어요. 몸에 느낌이 없었어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주변이 온통 까맸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느낌이 나지 않았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나는 너무 무서웠어요. 너무 무서워서 눈물만 흘렀어요.
“엉! 엉! 엉!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모든 일을 되돌려주세요!”
나는 엉 엉 울면서 외쳤어요. 그때였어요. 멀리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어요.
“성진아! 성진아? 왜 우는거야? 성진아, 일어나봐!”
엄마 목소리에요. 엄마가 내 몸을 흔들어요.
“헉!”
나는 내 몸을 흔들어주시는 엄마 덕분에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 앉았어요.
“엄마! 꿈이었어요? 우와, 다행이다!”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었어요. 모든 게 꿈이었다니, 이 현실이 너무나 감사했어요. 나는 신이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펄쩍 펄쩍 뛰었어요. 엄마를 꼭 끌어안으며 외쳤어요.
“오! 감사합니다!”
엄마도 나를 꼭 안아주시더니,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리셨어요.
“어라? 성진이 너어! 이불에 오줌 쌌구나!”
헉, 이불에 오줌을 싼 것만은 진짜였나 봐요. 그렇지만 나는 이 모든 게 너무나 다행이었어요. 모든 게 되돌려졌잖아요!
“엄마!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제가 젖은 옷이랑 이불이랑 다 빨아놓을게요!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에요, 오줌만 싸서 정말 다행이잖아요!”
나는 욕실로 뛰어가며 소리쳤어요.
오줌에 젖은 몸을 깨끗이 씻고, 아침밥을 먹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어요. 기분이 정말 좋아요. 꿈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이 나서 자꾸만 피식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나는 신이 나서 교실로 뛰어 들어갔어요. 수빈이가 자리에 앉아 있어요.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양 손을 허리에 올리고 서서 수빈이를 내려다보았어요.
수빈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아요. 그런 눈빛은 이제 상관없어요. 나는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