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는 힘을 다해 철길이 있는 언덕으로 뛰어올라갔다. 파란 물방울무늬 원피스가 펄럭인다. 온갖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종아리를 간지럽힌다.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걸 보면 천방지축 날뛰는 송아지가 따로 없구만, 아침마다 저렇게 꼭 치마를 챙겨 입고 나간다니까! 세화야~! 얼른 바지로 갈아입고 가!”
아침에 학교에 가는 나를 보며 소리를 지르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뛰어다닐 때 펄럭이는 치마의 느낌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지 엄마는 모르실 거다. 학교하고 우리 집 사이에는 철길이 가로놓여 있어서, 건널목이 있는 곳까지 멀리 돌아가기가 싫은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나처럼 이렇게 철길을 가로질러 다닌다. 기차가 오는지 좌우로 열심히 살펴봤다. 언젠가, 이씨 아저씨라는 사람이 이 기차 길을 건너다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지?”
“요즘 기차는 옛날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서, 기차가 다가오는 것도 몰랐대잖아요.”
“김씨가 그러는데, 그 정도로 흔적이 없으면 사고가 난 게 아니라, 기차에 뛰어올라 매달려서 간 거라던데”
“이 사람아, 그러면 이씨가 벌써 돌아왔지, 처자식을 두고 그대로 사라졌겠어?”
“아 혹시 알아? 기차사고로 위장하고 도망갔을지? 정신 줄 놓은 마누라하고 살기가 어디 쉬웠겠어?”
어떤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씨아저씨라는 사람의 기차사고라는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기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잽싸게 철길을 건너갔다. 언덕 아래쪽으로 선영이와 선영이의 엄마가 보인다. 선영이는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인 삼학년이다. 그렇지만 선영이의 엄마는 마치 어린아이마냥 선영이의 손을 꼭 쥐고 다닌다.
“선영아~! 기차가 선영이한테 온다~ 얼른 도망가!”
나는 큰 소리로 외치며 언덕길을 뛰어 내려갔다. 선영이 엄마가 깜짝 놀라 선영이 손목을 거세게 부여잡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깔깔깔깔”
나는 허리를 접어가며 큰 소리로 웃었다.
“뻥이지롱!”
혼비백산해서 뛰다가 멈춰선 선영이 엄마는 나를 돌아보며 때릴 듯이 주먹을 쥐어 올려 허공에 휘둘렀다. 나는 선영이엄마의 그런 주먹질이 너무나 익숙해서 하나도 무섭지 않고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사실은 선영이의 엄마 이름도 선영이이다. 엄마는 황선영, 딸은 이선영이다. 코스모스가 한창인 철로 옆 들판에서 선영이 엄마는 이미 한 다발 가득 코스모스를 꺾어 들고 있었다. 선영이의 책가방은 온통 코스모스로 장식해 있었다. 오늘따라 선영이 엄마의 머리가 더욱 엉망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채가 한쪽으로 심하게 틀어져 있었고, 낮잠을 한바탕 잤는지 베게에 짓이긴 듯 머리칼들이 삐툴 삐툴 헝클어져있었다. 얼굴 표정도 늘 그렇듯이 무심한 표정이다. 게다가 목이 늘어난 분홍색 윗도리에 분홍색 고무줄치마, 분홍색 쓰레빠까지, 정해진 수학공식처럼 늘 분홍공주 차림이다. 언제나 들판을 돌아다녀서인지 유달리 검붉게 그을린 피부에 분홍색 차림은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띄었다.
엄마는 내가 가끔씩 감기에 걸리면 몸이 아픈 것처럼, 선영이 엄마는 어릴 때부터 마음이 아픈 거라고 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돌아가시는 걸 봐서 그 충격으로 이상해진 거라고도 하고, 독감에 걸려 열이 심하게 나고 나서 저렇게 되었다고도 했다.
동네사람들은 선영이 엄마가 30살이 되었을 때, 떡집에서 일을 하던 이씨와 결혼을 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선영이가 태어났지만, 선영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 선영이 아빠는 집을 나갔다. 선영이 엄마는 혼자서 선영이를 끔찍이도 아끼고 돌보면서 키웠다. 선영이를 키우는 모습만큼은 마음이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늘 말이 없어서, 과연 말을 할 수 있을 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을 안했던 선영이 엄마는 선영이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딸을 불렀다고 했다.
“할 줄 아는 말이 지 이름 밖에 없으니까 딸도 지 이름으로 부르는 거겠지”
“그게 말이 되? ‘선영아,’ 라는 말을 할 수 있는데, ‘아야어여’를 못하겠어? 그냥 말을 안 하는 거겠지”
“떡집아줌마가 똑똑히 들었대. 떡집에 들어와서 ‘선영이 아빠 못 봤어요?’ 라고 말했다잖아.”
말 하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고, 근거 없는 소문이라는 말도 있다. 나도 선영이 엄마가 ‘선영아!’라고 부르는 것 말고는 한 번도 말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선영이는 원래 현주라는 이름이 따로 있지만, 언제부턴가 동네사람들도 현주를 선영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선영이의 엄마 이름도 선영이, 현주도 선영이. 둘 다 선영이다.
알록달록 선영이의 책가방은 예뻤다. 어릴 때는 늘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선영이의 책가방이 부럽기도 했다.
“우와~ 오늘도 코스모스 많이 땄네! 또 엄마가 학교에 데리러 오셨어?”
나는 살갑게 말을 시키며 다가갔지만, 선영이는 언제부턴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선영이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에게 꼭 붙들려있는 손이 부끄러운 듯 선영이의 시선이 자꾸만 엄마와 꼭 잡은 손으로 향했다. 손을 빼려는 듯 선영이는 자꾸만 엄마에게 잡힌 손을 당겼고, 그럴수록 선영이 엄마는 선영이의 손을 더 세게 꼭 쥐었다. 포기한 듯 선영이는 손에 힘을 풀고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괜히 멋쩍어서 못 본 척 뒤로 돌아 집으로 뛰어갔다. 논 옆길을 한참을 달려서 집에 도착했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세화 왔어? 얼른 마루에서 숙제부터 해. 엄마가 고구마 삶아줄게!”
엄마는 날 보자마자 숙제부터 말씀하신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은 채로 신발도 벗지 않고 뒤로 누워버렸다. 왠지 책상 앞에 앉기도 싫고, 숙제도 귀찮았다. 가을 하늘이 푸르고 높았다. 햇볕이 따뜻하고 살랑 살랑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나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아니, 선영애미가 웬일이래, 그렇게 순하던 애가...”
“선영이가 지 엄마 몰래 밖에 나갔는데, 글쎄 누가 잡아간 줄 알고 그런 거 같다잖아.”
나는 어른들의 웅성이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제정신은 아니어도, 위험하지는 않아서 여지껏 동네에서 함께 살았는데, 이래가지고 어디 무서워서 살겠어요? 아이들 걱정도 되고...”
엄마가 아직 누워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동네 어른들에게 말했다.
“그때 마침 학교 끝나고 집에 가던 중학생들이 혼비백산을 했다지?”
“애들이 얼마나 놀랬겠어요. 그 사람 같지도 않은 꼴로 커다란 식칼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녔으니...”
“그래도 다친 사람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떡집 형님이 가보니까, 요즘 계속 약을 안먹었는지 약봉지가 다 그대로 있더래요.”
“아이고, 약을 안먹어도 가끔씩 이상한 짓은 해도 이렇게 위험하게 행동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웬일이래.”
“아무래도 안되겠네. 동네에 그런 위험한 환자가 살고 있는 것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어. 게다가 같이 있는 선영이도 걱정이지, 아무리 지 새끼는 지극정성으로 키운대도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장담을 하겠어.”
이장님이 무언가를 다짐한 듯이 말씀하셨다.
“엄마, 선영이네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선영이가 걱정이 되었다. 선영이네 집에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늘 장난만 쳤던 일이 후회가 되었다.
“일어났어? 숙제도 안하고 잤지? 어른들 하는 일이니까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잘 챙겨. 어여 밥부터 먹자.”
마루에는 이미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이장님과 동네 어른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나는 입을 쭈욱 내밀고는 엉덩이를 마룻바닥에 뭉기적거리며 밥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 일이 있은 후,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선영이 엄마는 마을 경로당에서 살게 되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경로당에서 번갈아가며 선영이 엄마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약도 잘 챙겨 먹이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동네 방송도 나왔다.
선영이는 떡집 아줌마가 맡아주시고 있다. 선영이는 더 이상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주거나 데리러 오지 않았다. 선영이가 벌써 10살인데, 사실 학교에 손을 꼭 잡고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선영이 엄마가 이상하긴 했다. 나는 8살에 학교에 입학했을 때, 딱 일주일만 엄마 손을 잡고 다녔고, 그 뒤로는 이렇게 혼자서 잘만 다니는데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혼자서 잘만 다닌다. 선영이만 엄마가 데리고 다녔었다. 뭐 그래봐야, 우리 학교엔 전교생이 50명도 안되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학교 가는 길에 나는 혼자 걸어가고 있는 선영이를 봤다.
“선영아~!”
나는 선영이를 부르며 뛰어갔다. 선영이가 뒤돌아본다.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선영이의 웃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같이 걸어갔다. 오늘은 내가 말을 시키면 선영이가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무슨 말을 시켜볼까 곰곰 생각을 하려고 했는데, 교문 앞에 선영이 엄마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선영아! 니네 엄마 오셨어.”
나는 선영이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선영이는 흠찟 놀라며 엄마를 쳐다보았다. 잠깐 그 자리에 서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더니, 갑자기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언니, 가자!”
선영이는 나를 끌고 엄마를 못 본 척 하며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휙 지나 학교로 들어갔다. 나는 선영이 엄마의 얼굴을 봤다가 선영이를 봤다가를 번갈아하며 교문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선영이 엄마는 그런 선영이의 모습을 보며 물끄러미 서 있기만 했다. 표정이 많이 슬퍼보였다. 옆에 선영엄마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이장님도 보였다. 아마도 선영이를 보고 싶어 해서 데리고 오셨나보다.
선영이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나도 선영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만 하다가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교실로 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에, 어쩌면 학교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오늘 선영이가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기쁘지가 않았다. 온종일 선영이의 그 한마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언니, 가자!’
‘언니, 가자!’
그 뒤로도 나는 종종 선영이 엄마가 학교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침에 서 있기도 했고, 하교 길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선영이는 매번 차갑게 엄마를 못 본 척 하고 지나갔다.
선영이는 하루하루 밝아져가는 것 같았다. 조금씩 말을 더 하고, 웃는 얼굴도 가끔씩 보여줬다. 얼굴에 뽀얗게 살도 오르고 머릿결도 찰랑찰랑 해진 것 같았다.
가을 햇살이 한여름 뙤약볕처럼 뜨겁던 어느 오후였다. 나는 오늘따라 철도 건널목이 있는 쪽으로 멀리 돌아서 집에 가고 있었다. 자꾸만 지름길로 가로질러 무단으로 철길을 건너지 말라는 교장선생님의 신신당부가 있었어서 나를 비롯한 우리 학교 학생들은 건널목을 이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며 철도 건널목 가까이에 갔는데, ‘띵동 띵동 띵동’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기차가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차단기가 내려가고 사람들은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건널목 양 편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건널목 건너편에 선영이 엄마가 보였다. 그리고 선영이도 보였다. 선영이가 철로에서 너무 가깝게 철로를 등지고 서 있었다. 선영이 엄마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선영이에게 다가갔다. 철로에서 떨어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선영이는 엄마를 피하려는 듯이 한 발짝씩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선영이 엄마는 기겁을 하며 선영이에게 더욱 다가갔다. 뒷걸음질 치던 선영이가 갑자기 철로로 올라섰다. 기차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건널목을 지키던 철도아저씨가 깜짝 놀라 큰 소리로 소리쳤다.
“학생! 나와, 얼른 나와!”
선영이는 놀라서 기차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정적이 흘렀다. 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 순간 건너편에서 분홍색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였고, 순식간에 내 발 밑으로 선영이 엄마가 선영이와 함께 뒹굴러지고 있었다.
어느 새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철컹철컹 긴 기차가 지나가고, 선영이 엄마 품에서 선영이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선영이는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있었고, 선영이의 머리와 엉덩이 밑을 감싸고 있는 선영이 엄마의 양 손은 피투성이였다. 찢어진 분홍색 옷의 소매 사이로 피와 흙이 범벅이 된 선영이엄마의 팔이 보였다. 다리에도 여기저기 상처가 난 듯 피가 보이고 있었다.
기차가 다 지나가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선영이 엄마와 선영이를 빙 둘러 섰다. 선영이가 일어나 앉았다. 오른쪽 뺨 눈 밑쪽에 살짝 상처가 보일 뿐 다친 데는 없어보였다. 그러나 선영이 엄마는 헝클어진 머리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길에 뒹굴던 채로 누워있었다. 선영이는 놀라서 커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엄마를 부르며 살펴보고 있었다.
“엄마, 엄마”
“선영아...”
선영이 엄마가 가늘게 눈을 뜨며 겨우 선영이의 이름을 불렀다. 철도아저씨가 허겁지겁 다가오더니 두 사람을 살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학생들, 학생들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 여기 있지 말고, 어여들 집으로 가!”
나는 아저씨가 밀어대는 통에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자꾸만 돌아보았다. 철도아저씨가 선영이와 선영이 엄마를 부축해서 일으키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한동안 선영이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도 오지 않는 것 같았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이기만 하면 그날의 사고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남편 그렇게 보내고, 아이까지 그렇게 보낼 뻔 했는데 천만 다행이지, 돌 많은 철길에서 뒹굴어가지고 온몸이 멍투성이래. 그래도 애를 살렸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아이고, 선영이가 그 일 후로 말을 안하고 자꾸 울기만 한 대요.”
“아, 선영애비는 사고가 난 게 아니라니까, 도망 갔대잖아. 얼마 전에 이씨를 봤다는 사람이 있어!”
“곧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지? 동네사람들도 그만하면 할 만큼 한 거지.”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은 사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무성해져만 갔고, 가을도 점점 깊어져 들판이 온통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추수가 끝나 한가해진 엄마 덕에 매일같이 마루에 앉아 공부를 했다. 숙제도 다 하고, 일기도 쓰고, 학습지도 다 풀고, 이젠 공부할게 없다고 일어서면, 엄마는 공부에는 끝이 없는 거라시며 자꾸만 책상 앞에만 앉아있으라고 하셨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말은 살찌우고, 나는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엉덩이에 살을 찌우고’ 불만에 가득 차 종합장에 끄적 끄적 낙서를 하고 있는데, 이장 아저씨가 우리집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아이고, 이제야 내가 좀 한가해지겠네, 그동안 선영애미 지키느라 내 할 일도 제대로 못하고 다녔잖아!”
“선영애미 갔어요?”
마당 한켠 수돗가에 앉아서 배춧잎을 씻고 있던 엄마가 일어서며 말씀하셨다.
“이제 금방 갈거야. 병원 차가 지금 거의 다 왔다고 전화가 왔어.”
“이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선영이도 지 아빠 따라 가서 마음 편하게 살면 되겠네요.”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깜짝 놀라서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을 신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세화야, 어디가! 집에서 얌전하게 공부 좀 하랬더니, 또 어딜 뛰어나가!”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마을 입구의 경로당으로 단번에 뛰어갔다. ‘충남정신병원’이라고 씌여 있는 하얀 봉고차가 정자나무 아래 서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아저씨들에게 양쪽 팔이 붙잡힌 선영이 엄마가 겁에 질린 듯 경로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선영이 엄마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선영이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만 선영이 엄마를 에워싸고 있었다. 선영이 엄마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봉고차에 올랐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연신 떡집이 있는 쪽을 살펴보는 듯 했다. 별안간 눈을 크게 뜨며 막 닫히려던 차의 문을 잡아서 막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선영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엄마! 엄마아!”
선영이 뒤에는 선영이와 꼭 닮은 낯선 아저씨도 같이 뛰어오고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당황해하며 차 문을 얼른 닫으려고 했다.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안돼요, 선영이가 엄마랑 인사해야 된단 말이에요!”
나는 나도 모르게 뛰어나가서 차 문이 닫히는 것을 막았다. 하얀 옷의 아저씨는 머뭇거리며 선영이를 기다려주었다.
“엄마아!”
선영이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차에 뛰어 오르며 엄마 품에 안겼다.
“엄마, 잘못했어, 엄마! 내가 잘못했어! 엄마 가지 마아! 엉엉엉”
선영이 뒤에 따라오던 아저씨가 달려들어 선영이를 뒤에서 끌어안아 차에서 내렸다.
“아빠 싫어요! 아빠 저리가!”
선영이는 온 몸을 버둥거리며 아저씨의 팔을 뿌리쳤다.
“엄마! 엄마 보러 갈게! 내가 꼭 엄마 보러 많이 갈게! 엄마 사랑해!”
선영이는 팔을 내밀어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선영이 엄마는 선영이를 잡아당겨 가슴에 꼬옥 품었다가 내려놓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두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봉고차의 문이 닫히고, 병원차는 우리 마을을 떠났다. 선영이는 병원차가 떠난 뒤에도 한참을 정자나무 밑에서 울며 서 있었다. 선영이 뒤에는 선영이처럼 피부가 검고 키가 작은 아까 그 낯선 아저씨가 선영이의 양쪽 어깨를 다정하게 잡고 서 있었다.
며칠 뒤, 선영이도 아빠와 함께 우리 마을을 떠났다. 사람들은 한동안 선영이네 이야기를 했지만, 점 점 뜸해지고 잊혀져 갔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가끔씩 우리는 선영이를 기억해 내고 그때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씨가 돈을 많이 벌어서, 시내에 아파트를 사놓고 선영이를 데리러 온 거였대. 선영애미 병원비도 댄다던데?”
“아, 선영이 그 어린 것이, 기특하게도 꼬박꼬박 엄마를 만나러 간다는 구만!”
“선영애미가 워낙에 선영이를 많이 아끼고 사랑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