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김은혜
‘집’이라는 가장 내밀한 진료실로의 출근
흰 가운을 입고 병원 복도를 걸을 때와, 청진기와 모니터링 기기가 든 가방을 메고 환자의 집 대문을 열 때의 공기는 확연히 다르다. 병원에서의 죽음은 흔히 ‘데이터의 정지’로 수렴되지만, 자택에서의 죽음은 한 사람의 삶이 완성되는 마침표이며, 남겨진 가족에게는 또 흘려보내야 하는 슬프지만 고귀한 여정 중 하나가 된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연간 사망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다사(多死) 사회’의 한복판에 서 있다. 기술의 진보로 생명 연장은 가능해졌으나,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사회적 답변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 지점에서 재택 임종은 단순한 의료적 선택을 넘어, ‘살던 곳에서 늙어가고 마무리를 맞이하는 것(Aging in Place)’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만난 어떤 말기 암 환자들은 내 손을 잡고 간절히 속삭였다.
“선생님, 저 그냥 집에서 가면 안 될까요?”
하지만 그 간절한 물음 앞에 나는 매번 망설였다. 배액관 관리의 어려움, 감염에 대한 두려움, 갑자기 찾아올 돌발 통증을 집에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의학적으로는 분명 타당한 근거였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어려움과 두려움이 오롯이 100% 환자를 위해서였을지 의문이 들곤 한다.
때때로 꽤 많은 의사가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치료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듯, 여정의 마침표를 앞둔 이들 앞에서 혹시 나를 위한 결정을 내렸던 건 아니었을까. 환자가 익숙한 창밖의 풍경 대신 천장의 형광등을 보며 눈을 감게 한 것은, 의료진인 나의 ‘관리 편의’가 개입된 결과는 아니었을까. 그들을 병실이나 응급실로 보낼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 남았던 무거운 부채감은 아마 그 죄책감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재택 의료와 재택 임종 현장에서 한의사가 수행하는 역할은 전통적인 이미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현대적인 진단 지표와 다각적인 평가 도구를 활용해 환자의 전신 상태를 정밀하게 모니터링한다. 환자가 오늘 하루를 얼마나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지, 인지 기능과 신체 기능의 저하 속도는 어떠한지를 객관적으로 관리하고 조율한다.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오심과 구토를 다스리고, 전신 순환을 도와 욕창을 방지하며, 정신적 불안을 다독여 환자의 의식이 가라앉기 직전까지 명료하고 존엄한 상태를 유지하게 돕는 일. 이는 특정 직역의 권한을 넘어 ‘살던 곳에서의 마무리’를 지원하는 필수적인 의료적 돌봄이다. 한의학은 그 과정에서 환자의 ‘결’을 세심하게 살피며 삶의 질을 마지막까지 지탱해내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물론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직종을 떠나 의료진 모두가 ‘환자가 원래 살던 곳에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체계가 절실하다. 특히 야간과 휴일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과, 사망 확인 및 행정적 절차를 지원하는 현실적인 수가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재택 임종을 담당하는 의료진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술기만큼이나 중요한 ‘머무름의 미학’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병을 이기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이 의료의 승리라고 배웠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의 완성임을 인정할 때, 의료의 진정한 가치가 비로소 실현된다.
우리는 환자의 마지막 한 걸음을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기계적인 진단에 매몰되지 않고 환자의 주거 환경을 살피며, 가족의 피로를 읽어내고, 죽음의 징후를 미리 예견하여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곁에 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그 어떤 처치보다 강력한 완화제가 되는 곳, 그것이 바로 재택 임종의 현장이다.
재택의료센터의 문을 열고 환자의 집으로 들어서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을 마지막까지 존중하겠다는 서약이다. 예전에 차마 보내드리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빚을 갚는 마음으로, 이제는 그 평온한 마침표를 찍어줌에 우리 한의사의 손길도 익숙히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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