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김형은
1박 2일에 주요 복불복으로 쓰이는 차가 있다. 고삼차. 웬만한 쓴 맛에는 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고삼을 먹어보니 머리를 울리는 듯한 쓴 맛에 놀라버렸다. 단순히 입 안에서 끝나는 맛이 아니라, 한동안 감각이 남아 있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괜히 벌칙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강렬한 첫인상을 가진 고삼은 사실 오래전부터 약재로 활용되어 온 식물이다. 고삼(Sophora flavescens)은 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주로 뿌리를 건조해 사용한다. 구부러진 뿌리 모양 때문에 ‘도둑놈의 지팡이’라는 별명도 있으며, 같은 콩과 식물인 황기와 자주 비교되지만 성질은 정반대에 가깝다. 황기가 기운을 보충하는 따뜻한 약이라면, 고삼은 몸의 열을 식히는 차가운 약이다.
고삼은 이름 그대로 ‘쓴 맛(苦)’이 특징이다. 한의학에서 쓴 맛은 단순한 미각이 아니라, 몸 안의 열을 내리고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는 작용과 연결된다. 실제로 고삼은 열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증상에 사용되어 왔다. 갈증이 심하거나, 소변 색이 짙어지는 경우, 혹은 염증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몸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고삼은 청열(淸熱) 작용을 하는 대표적인 약재로 분류된다.
특히 고삼은 피부와 점막 질환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 습진, 가려움, 부스럼과 같은 피부 문제뿐 아니라 구내염이나 생식기 궤양에도 활용되어 왔다. 흥미로운 점은 복용보다는 외용으로 더 자주 쓰였다는 것이다. 달인 물로 씻거나, 가글하거나, 목욕제로 사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강한 쓴 맛을 직접 견디지 않으면서도 효과를 얻기 위한 지혜라 할 수 있다.
또한 고삼은 소화 기능을 자극하는 작용도 한다. 쓴 맛이 위장을 자극해 소화액 분비를 촉진하고, 간과 담의 기능을 도와 전체적인 대사를 원활하게 만든다. 우리가 쓴 나물을 먹고 입맛이 도는 경험과 비슷한 원리다. 단순히 불쾌한 맛이 아니라, 몸에 필요한 자극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도 고삼은 항염, 항알레르기, 항균 작용 등 다양한 가능성이 보고되고 있다. 마트린과 옥시마트린 같은 성분이 주요하게 작용하며, 면역 반응 조절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열을 내린다’고 표현했던 효능이 현대적으로도 일정 부분 설명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고삼은 성질이 차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잘 맞는 것은 아니다. 평소 몸이 차거나 소화기가 약한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으며, 지나치게 강한 쓴 맛 자체가 복용의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에도 탕약보다는 환약이나 외용제로 더 많이 활용되었다.
예능에서는 벌칙으로 등장하지만, 고삼은 단순히 피해야 할 ‘쓴맛’이 아니다. 그 강렬함 속에는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역할이 담겨 있다. 입에 남는 쓴 맛처럼, 고삼의 효능 역시 오래도록 몸에 작용하는 약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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