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김지원
[분노와 집착의 시대, 사상의학의 ‘성명론(性命論)’과 ‘유식학’이 만날 때]
오늘날 현대인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에 자신을 던져놓고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타인의 시선, 경제적 파동, 불가항력적인 질병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조선의 의철학자 이제마(李濟馬)와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은 시공간을 격해 같은 답을 건넨다. 치유의 시작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시선을 돌리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인식의 투영인가, 사회적 실재인가]
유식학의 핵심은 세상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의 투영이라는 통찰에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고통의 원인이 외부 객관 세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인식하는 주체의 오류와 집착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마의 사상의학 역시 이와 흥미로운 접점을 가진다. 그는 인간의 삶을 사(事)·심(心)·신(身)·물(物)의 네 범주로 나누었는데, 여기서 심(心)과 신(身)은 나의 주관적 영역이며 사(事)와 물(物)은 내가 마주하는 객관적 세계다.
두 철학 모두 인간이 겪는 괴로움이 내가 바꿀 수 없는 영역인 ‘사(事)’와 ‘물(物)’을 나의 의지대로만 휘두르려는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마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유식학이 세상을 인식의 산물로 보아 내면의 깨달음을 강조한다면, 사상의학은 유교적 실천 철학을 바탕으로 ‘사(事)’라는 사회적 책무를 인정한다. 즉, 성명론적 수양은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세계를 올바르게 마주하기 위해 내 마음의 렌즈를 닦는 ‘인간 공학’적 과정인 셈이다.
[장부(臟腑)의 병은 마음의 치우침에서 온다]
이제마의 성명론이 단순한 도덕론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구체적인 ‘생물학적 기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성정(性情)의 편차가 장부의 대소를 결정하고 질병을 유발한다는 생리적 체계를 정립했다. 예를 들어, 소양인이 깊은 병에 드는 것은 단순히 외부의 병원균 때문이 아니라, 노성(怒性)이 폭발하거나 사무(事務)에 치우쳐 신(腎)의 기운이 깎였기 때문이다.
결국 병을 고친다는 것은 약물 치료를 넘어, 환자가 자신의 체질적 편착에서 기인하는 사심(邪心)과 태심(怠心)을 스스로 책(責)하는 과정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이나 사회적 사건에 분노하기보다, 그로 인해 흔들리는 나의 ‘심(心)’을 다스려 성정의 역동을 멈추는 것. 이것이 사상의학이 제시하는 능동적 치유의 핵심이다.
[자업(資業), 스스로의 명(命)을 세우는 힘]
물론 수양만을 강조하는 것이 자칫 모든 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의료적 개인주의’로 흐를 위험은 경계해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환경이나 가혹한 육체적 조건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법이다. 진정한 치료자라면 환자의 능동성을 깨우는 동시에, 그가 처한 객관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실질적 처방 사이의 정교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한의학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인문학적 치유의 길을 걷는다. 이제마가 강조한 자업(資業)의 가치처럼, 환자가 자신의 삶이라는 현장에서 건강한 본성을 회복하고 스스로의 명(命)을 세워나가도록 돕는 것.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그 능동적인 에너지가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성명론적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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