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가 남기고 간 쓰레기가 한 트럭은 나온다.
그의 흔적이 골목으로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 주인의 손때가 묻고 보살핌이 있을 때는 그럴 듯한 소장품이었더라도 일단 골목 밖으로 나오게 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일찍 보낸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남겨진 이가 그 짐을 모두 껴안고 살게 된다. 가슴에 응어리진 슬픔이 시간이라는 특효약으로 치료될 때까지...
사실 치료된 건 아니다. 잠시 아픔을 망각했을 뿐이다.
이렇듯 사람이 영원히 떠난 자리에는 뭔가가 남아있게 된다.
만약 그 무엇이 잘 보존된다면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그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우주 먼지 중의 하나가 이 지구에 잠시 왔다가 먼지로 다시 돌아갔다는 확실한 증표가 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이 바로 비석이다. 비석은 특유의 단단함으로 세월을 이겨낸다.
필자는 한 달 전 나가타 토꾸혼(永田德本 1513~1630)이라는 옛 한의사의 비석을 찾아 일본을 여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의성(醫聖)으로 추앙받는 이가 허준(許浚)이라면, 일본에서는 나가타 토꾸혼(永田德本)이다.
❮일본의학사❯에 나오는 이 신화에 가까운 인물의 일화를 소개해 본다.
초가집에 살면서 외출 할 때는 약자루를 목에 걸고 소 등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부귀를 가볍게 여기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스스로 약을 담은 대그릇을 짊어지고 다니며 “한 번 복용에 18전(錢)”이라고 부르면서 약을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의 의사들이 권세와 이익을 쫒는 것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였다.
1624년 토꾸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인 히데타다(당시 일본의 실권자)가 병에 걸려 여러 의사가 시도를 했지만 치료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치의가 토꾸혼(德本)을 추천하였다. 이에 소를 타고 바람같이 나타나 한 번 진찰한 후 처방하여 수일 만에 그의 병을 고쳤다. 히데타다가 크게 기뻐하여 후한 상을 내렸으나 이를 거절하고 “한 번 복용에 18전(錢)”이라고 말하면서 치료비를 받고 떠났다. 이후 1630년에 향년 118세로 사망하였다.
그야말로 신선이 따로 없다. 하지만 실존인물에 사건도 팩트다.
봉건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진료했던 인물이다.
믿기지는 않지만 118세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그는 조선 출신 의원 김덕방(金德邦)과도 인연이 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의 전리품으로 서적과 의관들을 잡아갔다. 그 때 잡혀간 포로 중의 한 명이 김덕방이다. 기무라 겐테 (木村元貞)가 저술한 침구극비전 (鍼灸極秘傳)의 서문에 의하면 김덕방이 토꾸혼(德本)에게 침술을 전수하여 주었고 이 책은 그의 기술을 정리한 책이라고 쓰고 있다. 조선의 침술이 당대 일본 최고의 의사에게 전수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남탑(藍塔 일종의 사리탑)이 나고야현 오까야시에 있다.
나고야에서 렌트카를 빌려 2시간 반을 이동해서 해질 무렵 그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자그마한 시골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그의 탑은 의외로 너무 소박하였다. 오까야시의 문화재라는 표식이라도 없다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초라하여서 한편 당혹스러웠다.
석양의 사리탑이 왜 이리 외롭고 쓸쓸하게 여겨지던지,
이런 유적을 이 정도 밖에 보존하지 못하는 것에 속상하고 섭섭하였다.
여기까지 와서 의료 제도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하다니...
아무리 훌륭한 선배가 있었다하더라도 충실히 따르는 후배가 없다면 그의 유산은 제대로 보존되기 어렵다. 한의사 제도가 없는 일본의 한계라고 본다.
도꾸혼은 스와호(諏訪湖)라는 아름다운 호수 곁에 잠들어 있다.
스와호가 갑자기 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는 것을 출발 직전에야 알았다.
‘너의 이름은’이라는 유명 에니메이션의 배경지여서 그렇다나 뭐라나.
여행 목적을 이루었으니 그 날 저녁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내와 다다미방에 나란히 누워 그 만화영화를 감상하였다.
[사진에서 한 가운데 위치한 작은 탑이 토구혼의 남탑(藍塔)이다.]
[스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