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제도가 정착된 이후, 병원과 약국은 공간적·기능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되었습니다. 이는 특정 병원과 약국 사이의 유착을 방지하고, 환자가 약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같은 건물, 심지어 같은 층에 병원과 약국이 나란히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존에는 이런 경우 ‘부속 약국’으로 보아 허가가 취소되는 분쟁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같은 층 입점이라는 사정만으로 약국 개설을 제한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C 건물 1층은 101호, 102호로 나뉘어 있었고, 101호와 지하 공간은 안과의원이 임차하여 사용 중이었습니다. 한편 약사 B는 같은 건물 1층 102호를 임차해 약국 개설 등록을 신청했고, 광진구 보건소는 이를 허가했습니다.
인근 건물에서 약국을 운영 중이던 약사 A는 같은 층에 병원과 약국이 나란히 위치하므로 약사법상 금지되는 ‘부속 약국’에 해당한다며, 광진구 보건소를 상대로 양국 개설 등록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A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4구합61858 판결).
재판부는 “약사법 제20조 제5항 제3호는 의료기관과 약국을 공간적·기능적으로 독립시켜 유착과 담합을 방지하려는 것이 입법 취지이다. 그러나 이는 약국을 의료기관이 입주한 건물 자체로부터 독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므로, 개별 의료기관을 기준으로 해당 약국이 그 시설 안 또는 구내, 부지 일부에 위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안과의원과 약국은 칸막이 공사를 통해 출입문이 구분되어 있고, 건물주는 단순히 임대 수익을 위해 층을 나눈 것일 뿐이다. 따라서 약사법상 금지되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건물에 다른 병원들이 함께 입점해 있고, 주변에도 약국이 여러 곳 있어 특정 병원과 약국 간 유착 가능성도 낮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같은 층 입점만으로는 제한 불가하다는 점, 즉, 중요한 것은 같은 층 여부가 아니라, 물리적 독립성과 담합 가능성 여부라는 점,
둘째, 건물 전체가 아니라 특정 의료기관과 약국의 구조적 관계를 따져야 한다는 점,
셋째,독립된 출입문과 여러 병원 입점 그리고 주변 약국 분포 등을 고려하면 부속 약국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이 판결은 병원과 약국의 위치 관계에 대한 경직된 해석을 완화하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보건소 등 행정청이 단순히 ‘같은 층에 있다’는 이유로 약국 개설을 불허하거나 취소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유사한 인허가 분쟁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의약분업의 취지는 존중하되, 지나치게 형식적인 잣대로 약국 개설을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번 판결은 현실적인 균형 해석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약국이 병원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구조라면, 같은 층 입점 자체를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환자의 선택권을 오히려 침해할 수도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약국 개설을 준비하는 경우, 출입문 구분·동선 차단·여러 병원 입점 여부 등을 사전에 검토하고 증빙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건소나 행정청 역시 이번 판례를 기준으로 보다 합리적인 심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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