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18세기 한일 의학 교류의 중심, ‘조선의 반도체’ 인삼의 비밀을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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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일 의학 교류의 중심, ‘조선의 반도체’ 인삼의 비밀을 풀다

기사입력 2026.04.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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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중보건한의사협의회 경상남도 대표 김태준


 

본문:

- 17세기판 무역 전쟁: 조선의 인삼 수출 통제(禁蔘)와 일본의 밀수 대작전

- 통신사 의학문답으로 본 치열한 '자원 무기화'와 한일 정보전

- 효능 중심의 조선 vs 명물학적 실증주의의 일본, 극명하게 엇갈린 본초학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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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설명에도시대 실증적 본초학 연구의 산물인 조선인삼경작기(朝鮮人蔘耕作記)표지

(사진1=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 국서데이터베이스)

 

최근 주식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연일 상승 랠리를 펼치며 경제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반도체 패권이 한 국가의 명운을 결정짓는 시대, 세계 각국은 첨단 기술 유출을 막고 공급망을 쥐기 위해 치열한 무역 전쟁과 수출 통제를 불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18세기 조선의 최고 하이테크 수출품이자 전략 물자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삼(人蔘)’이다. 과거 한의학계에서 발굴 및 번역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조선통신사 의학문답 기록과 관련 사료들을 살펴보면, 당시 조선 인삼을 둘러싼 일본의 열광적인 관심과 양국 간의 살벌한 '무역 전쟁'의 실체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17세기판 반도체 수출 통제: 삼도구 사건과 조선의 '금삼(禁蔘) 정책'

오늘날 강대국들이 희토류나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며 제재를 가하듯, 17세기 후반 조선 역시 인삼 수출을 전면 차단한 적이 있었다. 발단은 1685, 조선 채삼인(採蔘人)들이 인삼을 캐기 위해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들어갔다가 청나라 관리를 조총으로 쏘아 상해를 입힌 '삼도구(三道溝) 사건'이었다. 외교적 분쟁을 우려한 조선 조정은 즉각 북쪽 국경의 인삼 채취를 금지함과 동시에, 이듬해인 1686년부터 동래 왜관을 통한 일본으로의 인삼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금삼(禁蔘) 정책'을 단행했다. 공식적인 수입로가 막히자 일본 대마도번은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조선 인삼은 일본 내 의약품 수요를 감당하는 것을 넘어, 대마도 도주가 에도 막부에 반드시 바쳐야 하는 핵심 진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진상품이 끊겨 막부의 눈밖에 나면 번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었기에 대마도번은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외교 사절인 재판차왜(裁判差倭) 히라타 쇼자에몬은 이례적으로 무려 4년이나 왜관에 체류하며 조선 측에 수출 금지를 풀어달라고 집요하게 매달렸다. 동시에 이들은 외교적 해결에만 기대지 않고,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왜관의 역관들을 매수하여 한밤중에 수백 근의 인삼을 몰래 빼돌리는 등 대규모 밀무역을 조직적으로 자행했다. 이는 현대의 수출 제재망을 뚫고 첨단 부품을 밀수하려는 국가 간의 암투를 방불케 한다.

 

자원 안보를 향한 일본의 집념: 국산화 야망과 명물학의 태동

일본이 인삼의 '국산화'에 사활을 걸었던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인삼 수입으로 인한 막대한 은()의 유출을 막으려는 경제적 목적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조선의 일방적인 금수 조치(수출 통제)에 휘둘리지 않고 자국의 '의료 안보'를 지키기 위한 절박함이 작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절박함은 초기에는 눈물겨운 '대용품 찾기''가공' 노력으로 나타났다. 1711년 신묘사행 당시 일본 의사 기타오 슌포(北尾春圃)는 사삼(沙蔘) 실물을 들고 와 조선 의관에게 보여주며 사삼이 인삼의 대용품이 될 수 있는지 캐물었다. 또한 1748년 무진사행 때는 카와이 슌코(河春恒)가 일본산 인삼의 쓴맛을 감추기 위해 감초물이나 꿀물에 담가 단맛이 나게 가공하여 조선 인삼의 대용품으로 쓰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대용품이나 가공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결국 이들의 집념은 본초를 대하는 양국의 관점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조선의 의학계가 약재의 '임상적 치료 효능'에 집중했다면, 일본은 약재의 명칭, 유래, 산지, 형태, 감별 등을 집요하게 따지는 명물학(名物學), 박물학(博物學)적 관점으로 빠져들었다. 어떻게든 조선 인삼의 생태와 재배 노하우를 알아내기 위해, 통신사를 맞이한 일본 의사들은 옛 본초서의 기록을 근거로 삼아 인삼이 자란다는 '가수나무'의 형태까지 꼬치꼬치 캐물었을 뿐 아니라, 자국에서 채취한 가짜 인삼을 들고 와 진품 여부를 끈질기게 감별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로 겐죠(野呂實夫) 등 일본의 본초학자들은 아예 60여 종의 동식물 목록을 들고 와 형태와 산지를 캐묻기도 했다. 물론 첨단 바이오 자원의 유출을 막으려던 조선 의관 조숭수(趙崇壽) 등은 "우리는 의학을 논하는 사람이지 채약인(採藥人)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고, 민간에서 은밀히 인삼 재배가 시작되고 있었음에도 "인삼은 영물이라 인위적 재배가 불가능하다"며 고도의 '정보 방어전'을 펼쳤다.

그러나 막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일본의 집념은 결국 결실을 보았다. 에도 시대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1720년대에 도쿄 고이시카와(小石川) 등 대규모 국립 약용식물원(사진2)을 조성했고, 일본 학자들은 1728년경 닛코(日光) 등지에서 조선 인삼 종자를 직접 시험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본초학자들은 책상에서 의서를 외우는 대신, 식물원에 나가 흙을 만지고 재배하면서 서양의 린네(Linnaeus)에 버금가는 실증적 식물분류학을 태동시킨 것이다. 현재 일본의 약학대학들이 부속 '약용식물원(藥用植物園)'을 필수로 갖추고 학생들이 생약을 직접 재배, 관찰하는 전통은 수백 년 전 조선의 무역 통제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에도 시대 본초학자들의 뼈저린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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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설명]에도시대 실증적 본초학 연구의 산실이었던 고이시카와 식물원의 온실 전경.

(사진2=京浜にけ, CC BY 3.0, 위키미디어 공용)

 

 

18세기의 엇갈린 궤적, 현대 한의학과 캄포(漢方)의학의 차이를 빚어내다

18세기 조선통신사를 무대로 펼쳐진 인삼 전쟁과 본초학의 엇갈린 행보는 단순한 과거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임상 효능과 인체 내부의 병리적 원리 탐구에 집중했던 조선의 학풍은 약재의 외형과 산지를 파고든 일본과 확연히 달랐다. 조선 의학계는 동의보감등의 종합 의서를 바탕으로 질병의 원인과 처방을 체계화하며 정교한 변증(辨證) 체계를 구축했고, 이러한 학문적 토대는 19세기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으로 이어져, 환자 개개인의 장부 대소와 체질적 특성까지 깊이 있게 고려하는 고도화된 맞춤 의학을 꽃피우게 했다. 반면, 인삼을 국산화하기 위해 토양을 분석하고 종자를 연구했던 일본의 명물학적 집념은 약재의 실증적 규격화와 식물분류학으로 이어져, 현재 일본 캄포(漢方)의학 특유의 규격화된 생약 연구와 제약 산업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결국 양국의 치열했던 정보전은 각자의 환경에 맞게 전통의학을 진화시킨 원동력이었다. 300년 전에는 서로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평행선을 달렸지만, 이제는 각자 발전시켜 온 두 의학의 강점과 궤적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의 기록이 한국의 한의학과 일본의 캄포의학이 왜 지금과 같은 차이를 가지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역사적 거울이 된 셈이다.

 

참고문헌
이해진, 17세기 후반 조선의 禁蔘 정책과 대일 인삼 무역, 사총(史叢), 2024.

차웅석, 18세기 조선통신사를 통한 한일의학문화교류, 동의생리병리학회지, 2006.

조기호, 근세일본 한방의학 산책, 물고기숲,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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