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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쓰는 편지

기사입력 2026.03.2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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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한의원 강솔

 

둘째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할 학교에서 2월에 커다란 사각봉투의 우편물이 왔다. <오거서 마음 편지>라는 제목의 안내문이었는데, 오거서란 다섯수레의 책을 뜻한다, 자녀가 대학에서 독서 문화를 체험하길 바란다, 부모가 편지를 써서 보낸다면 3월에 학교에서 그 편지를 전해주면서 책을 한권 주겠다 는 안내문과 함께 손 글씨로 편지를 쓸 수 있는 종이와 우편 봉투가 들어 있었다.

 

부모가 쓴 손 편지와 책 한권이라니. 나름 신선한 행사였다. 어떤 책을 줄지 궁금해서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종이를 앞에 두고 있으려니 20여년간 아이를 키우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일하러 나오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못 나가게 울부짖는 아이였다. 누구나 그렇지만 사춘기에는 사춘기의 사연이 있었다. 섬세하고 불안이 높은 아이에게 엄마로써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한참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엄마로써 아들한테 편지를 쓰려니 나 대학교 1학년때 딸로써 엄마한테 받은 편지가 떠올랐다. 1991년이니 벌써 35년전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집을 떠나 대학 기숙사에 갔다. 엄마가 없는 돈에 비싸고 가벼운 오리털 이불을 새로 사주었던 기억이 난다. 기숙사는 밤 10시에 점호를 해서, 10시까지 귀가 해야 했었다. 그때는 각 층 복도마다 전화가 한 대씩 있고, 기숙사에 있던 학생 중에 전화를 교환 해주던 학생이 있었다. 기숙사 대표번호로 전화를 하면 그 학생이 듣고 내용을 전달해주거나 2층 학생이면 2층 복도에 전화를 받을 수 있게 연결 해 줬던 것 같다. 3월에 신입생 환영회니 행사가 많았고, 향우회나 들어간 동아리들이 술을 엄청 많이 마시는 곳이었고, 나는 주는대로 술도 잘 받아 먹는 신입생이었다. 향우회였을까? 3월초 술을 마시다가 10시가 거의 다 되었는데, 다른 선배가 기숙사에 못간다고 연락을 하라고 하길래 전화를 했다. 못들어간다고. 그런데 그게 그 기숙사에선 절대 안되는 일이었던지 전화를 교환해주던 학생이 내가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내려갔다고 사감에게 전달, 사감은 집으로 전화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집에 계신 엄마는 얌전하던 딸이 대학에 가더니 기숙사에 거짓말을 하고 안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으신 셈이다. 다음날 기숙사에 갔더니 사감한테 엄청 혼이 났고 요주의 학생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전화를 교환해주던 학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뒤 집에서 편지를 받았다. 마치 인쇄한 듯 단정한 엄마의 편지. 왜 기숙사에 안 들어갔느냐는 내용은 없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내 딸을 믿는다. 어떤 일들이 있더라도 정직하게 성실하게 해내리라고 믿는다. 엄마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 구절이다. 태어나서 엄마에게 처음 받아보는 편지였다. 아마 그 뒤로도 엄마가 편지를 써서 보내신 일은 없었을 것 같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도 같다.

 

나도 그닥 곱게 자라지는 않았다. 엄마는 내가 사과를 밤톨처럼 깎는다고 등짝을 후려 치기도 하고, 엄마가 직장 다니고 자주 아파서 집안일도 꽤 많이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그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인데, 왜 본인 뜻대로 하지 않느냐고 잔소리 하거나 말을 심하게 하신 적은 거의 없다. 스무살의 3월에 받은 편지도 볼펜을 꾹꾹 눌러서 쓴, 힘이 들어간 글씨들 속에서, 기숙사 외박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편지의 아래쪽 끝에 내 딸을 믿는다. 너를 위해 기도한다. 라는 구절만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안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교사였던 엄마니까 오후에 학생들을 보내고 빈 교실에 앉아서 편지지를 꺼냈을지 모른다. 집을 떠나 보낸 딸이 걱정되고 불안했을 텐데. 최대한 말을 고르셨겠지. 하고 싶은 말이 많으셨을텐데, 왜 기숙사를 외박했느냐고 야단치고 길게 말하는 대신 엄마는 내 딸을 믿는다. 너를 위해 기도한다. 라는 말을 선택하셨다. 그런데 지난 30여년의 내 삶을 돌이켜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내려는 마음이 늘 있었다. 엄마의 그 편지 문구는 내 무의식 아래 늘 따라다녔던게 아닐까.

아이에게 편지를 쓰기가 더 어려웠다. 이 편지를 내 아들도 35년 뒤까지 기억할지도 모른다고 말을 한참 고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혼자 웃었다. 이것도 욕심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나도 결국은 그렇게 썼다. <아들아 너를 믿는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내기를 바란다. 너를 위해 기도 한다.> 너를 위해 기도한다.......내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진심을 담은 기도일 것이다.

 

3월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1월보다 3월이 더 푸릇 푸릇 새로운 시작인 것 같다.

아들에게 편지를 쓰려다 엄마에게 편지를 받던 스무살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스무살일 때 이렇게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30년 뒤는 상상할 수 없었다. 뚜벅뚜벅 걸어서 이만큼 왔다. 이번 3월에는 나에게 쓰는 편지를 보내보면 어떨까. 30년 뒤에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 기도한다... 라고 마무리하는 편지를 써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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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장은지
    • 원장님 멋진 엄마.. 멋진 어른이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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