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3학년 박상현
1920년대, 총칼 없는 전선에서 조용히 싸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병을 고치는 손으로 민족을 지켜냈고, 약방은 곧 항일운동의 거점이 됐다. 한의사들이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극에 달했던 시기, 전통의학은 철저히 억압받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한의사들은 민중 속에서 저항했고, 의료의 탈을 쓴 독립운동은 조선 땅 곳곳을 은밀하게 관통했다.
의술을 넘어, 독립운동의 선봉에 선 한의사들
단국대학교 김명섭 교수는 「1920년대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한의계 독립운동가들」이라는 논문에서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조명했다. 해당 논문은 2020년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됐으며, 의료와 민족주의가 결합된 ‘비무장 저항’의 한 형태로서 한의계 독립운동의 가치를 새롭게 부각했다.
김 교수는 이들을 “총과 칼 없이 싸운 전사들”이라 평했다. 이들의 공간은 약방이었고, 무기는 한의학, 그리고 조용한 결심이었다.
일제의 압박 속 전통의학, 저항의 상징이 되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는 ‘의사규칙’과 ‘의생규칙’을 통해 서양의학 중심의 의료체계를 강요하며 전통의학을 제도적으로 배제했다. 면허 발급은 막혔고, 한의사들의 활동 반경도 좁아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억압은 한의사들을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한의원은 환자의 병만 고치는 공간이 아니었다. 은신처였고, 연락소였으며, 때로는 작전회의 장소였다. 의술은 민족을 위한 무기가 되었고, 치료는 곧 투쟁이었다.
강우규, 김관제, 박세정… 의지로 싸운 이름들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강우규 의사다. 그는 평안남도에서 약장사로 활동하다 1919년, 서울 남대문역에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어려서부터 한방을 배웠고 약을 지어 팔았다”고 밝혔다. 그의 의술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투쟁의 밑바탕이었다.
김관제 한의사는 경남 김해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며 의열단과의 비밀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진료를 명분으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연락책 역할을 수행했다.
이 외에도 박세정, 박성용, 김대용, 심병조 등은 독립군 군의관으로 활약하며 부상병 치료는 물론 작전 보조, 정보 수집에까지 참여했다. 전장의 후방이 아닌, 실질적인 최전선에서 이뤄진 활약이었다.
‘한의사’라는 신분, 가장 강력한 위장
일부 인물들은 한의사라는 신분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장형은 부친에게서 한방을 익힌 후 전국을 순회하며 군자금을 모으고 조직 간 연락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훗날 단국대학교 설립에 참여하며, 당시 활동을 “한의사로 위장한 독립운동”이라고 회고했다.
이원직 역시 한의사 자격으로 경성에 머무르며 임시정부와의 연락 임무를 수행했고, 항일조직 운영과 자금 조달에 기여했다.
이들에게 ‘의술’은 신분을 보호하는 방패였고, 동시에 조국을 위한 도구였다.
아직도 명단에 오르지 못한 이들
김명섭 교수는 “이들의 활동은 총칼 없는 전선에서 민중과 함께 싸운 실천적 저항이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독립유공자 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누락이 아니다. 전통의학에 대한 제도적 저평가와 역사적 편견이 만들어낸 구조적 한계다.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한의학으로 지킨 나라
한의사들은 붕대보다 넓은 마음으로, 침보다 더 날카로운 의지로 조국을 지켜냈다.
그들의 싸움은 조용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그들의 이름이 비로소 역사 속에서 응답받아야 할 시간이다.
참고문헌
김명섭. (2020). 「1920년대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한의계 독립운동가들」.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학술세미나 발표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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