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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의학을 품다

실록 속 처방을 통해 본 정조의 몸과 마음
기사입력 2025.07.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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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스물두 번째 임금, 정조(正祖). 정조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개혁 군주이자, 탁월한 정치 감각과 문예에 대한 애정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하지만 그가 의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왕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조는 선대왕인 영조를 간병했고, 재위 기간 동안 마진과 같은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 직면하는 등 의학과 마주할 순간이 많았다. 정조는 수민묘전(壽民妙銓)이라는 의학 서적을 직접 편찬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에는 정조의 의학에 대한 관심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가 어떤 병을 어떻게 치료받았는지를 넘어, 어떤 약재에 흥미를 가졌고, 의관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으며, 왜 백성의 병까지 신경 썼는지까지 엿볼 수 있다. 정조는 조선의 의학이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힘썼다. 이러한 정조에게 의학은 무엇이었을까? 정조의 의학에는 어떤 시대정신과 인간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었을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가 실제로 어떤 증상에 어떤 탕약을 복용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기록에 주목하고자 한다. 정조실록54권 정조 24627(무인)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정신이 혼미한 증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탕약을 올리다. 가미팔물탕 한 첩을 달여 들여올 것을 명하다. 약원 제신을 접견하고 탕약을 마신 뒤 처방을 의논하다.’

정조가 자신의 정신 혼미 증상을 언급하며 가미팔물탕 처방을 지시하는 장면이다. 이는 정조가 탕약에 대해 직접 지시하고 복용하면서 의약 판단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이다. 단순한 환자로서가 아니라 의학적 판단의 주체로서의 정조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팔물탕은 기를 보하는 사군자탕과 혈을 보하는 사물탕을 합한 처방으로, 기와 혈을 모두 보하기 때문에 기혈쌍보제(氣血雙補劑)에 속한다. 어지럽고 팔다리에 힘이 없으며, 피곤하고 안색이 창백한 증상에 사용할 수 있다. 인삼과 숙지황이 군약(君藥)으로 들어가 익기양혈(益氣養血)한다. 같은 날, 의관이 정조에게 요즘 너무 오랫동안 주무십니다. 정신이 흐려진 것 같습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정조의 기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져 있었던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 날인 정조실록54권 정조 24628(기묘) 기록을 통해서 그의 쇠약한 상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강명길(康命吉) 등이 진맥한 뒤에 아뢰기를, "원기가 부족하기는 어제와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하자 정조가 가감내탁산을 내어오기를 명했다. 내탁산은 허한 것을 보하는 처방이다. 하지만 내탁산에는 중요한 효능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옹저가 곪아서 터진 것을 치료한다는 점이다. 허약한 상태에서 옹저가 생기거나, 기운이 없을 때 창이 생긴 것을 치료하고자 할 때 쓸 수 있다. 다른 기록들을 통해서도 정조가 종기(옹저)로 오랜 기간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정조는 재위 18년과 24년에 걸쳐 가미소요산을 반복적으로 복용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는 해당 증상이 장기적으로 그를 괴롭혔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소요산은 염증성 증상을 완화하기 때문에 옹저와 같은 종기에 좋다. 또한 정조는 화병을 오래 앓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소요산은 화병에 알맞은 처방이다. 소요산의 소요(逍遙)’는 유유자적하게 산책한다는 의미로, 먹으면 곧바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의미한다. 소요산은 간울(肝鬱)’로 인한 화병에 특히 잘 쓸 수 있다. 간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장기이다. 이는 간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부신피질호르몬(코르티솔)’에 직접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도 간은 정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장기로 여겨지며,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이 답답하고 울체된 상태는 곧 간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고 본다. 이처럼 간은 정신적 긴장과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기로 인식된다. 소요산은 간이 울체된 것을 풀어준다. , 기분장애, 갱년기상태와 같이 정서적 원인으로 간울이 생겼을 때 소간해울(疏肝解鬱)해 낫게 한다. 가미소요산은 소요산에 목단피와 치자를 가미해 열을 내리는 효능을 강화한 처방이다. 정조는 가슴이 꽉 막힌 듯한 열감과 화병 증상을 겪었기 때문에, 가미소요산은 그의 상태에 잘 맞는 처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가미소요산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증상에 대해, 한의임상진료지침에 따라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정조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도 종기와 관련된 기록이 등장한다. 종기 치료를 위한 처방은 그의 승하 직전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이때 사용된 처방이 바로 연훈방(烟熏方)이다. 연훈방은 수은이 포함된 약재를 태워 그 연기를 종기 부위에 쐬는 방식의 치료법으로, 강한 독성이 있어 사용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정조실록54권 정조 246, 정조는 약원 제신들에게 이제 연훈방을 시험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치료법을 직접 제안한다. 당시 그는 정신이 흐릿하고 몸 상태가 쇠약한 상황에서도, 어떤 처방이 필요한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단순히 치료받는 입장이 아니라, 치료 방향을 결정하고 실행을 검토하는 의학적 주체로서의 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탕약처럼 몸의 내부를 조절하는 방식이 아닌, 직접적인 자극인 연기를 통한 외부 처치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정조의 절박함과 결단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약원 제신 시수는 이에 대해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연훈방을 사용하면 오히려 정신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고한다. 정조는 종기의 진행 정도와 입맛, 열감, 맥에 대해 제신들과 함께 의논하며, 그들의 우려를 무시하거나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치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밝히면서도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함께 논의하며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병세에 대한 정조의 명확한 인식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판단과 선택을 스스로 주도하려 했던 절실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왕이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치료와 생존의 가능성을 끝까지 탐색하는 주체로 남아 있었다는 점은 그 어떤 정치적 업적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지금까지 정조의 의학적 관심을 처방 위주로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민생을 살피기 위해 그가 추구했던 의학을 알아보고자 한다. 정조의 새로운 면모를 들여다보면서도, 정조의 의학적 통찰과 실천을 통해 현대 한의학의 뿌리를 돌아보고 그 정신적 기반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벨루가와 역사 속 한의학

- 안녕하세요 벨루가입니다!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정조의 의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기사제공 : 대신만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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