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식 공중보건한의사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은 무서운 병이다.”
“한센인들은 격리되어야 한다.”
이런 말들이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소록도에 한센인들을 격리했던 이유는 단순히 감염 예방만이 아니었습니다. 사회가 가진 두려움과 혐오가, 그들을 섬으로 밀어넣었던 것이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그러한 차별적인 시선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안느 스퇴거, 마가렛 피사렉 수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벽을 조용히 넘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명의 수녀,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그들은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던 한센인들의 곁에 머물렀습니다.
1962년, 소록도에 외국인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였습니다. 반인권적인 차별에 시달리던 한센인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 것입니다. 4년 뒤에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간호학교 시절 룸메이트였던 마가렛 피사렉 수녀가 소록도에 합류했습니다.
두 수녀는 원래 5년만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환자들과 함께한 세월은 어느덧 4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웃고, 울며 그들을 위로해주었습니다.
환자들의 몸을 씻기고, 밥을 떠먹여주고, 상처를 직접 닦는 일. 누군가는 그들을 ‘천사’라고 불렀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저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인 사람’이라 말했습니다.
2005년, 두 수녀는 조용히 오스트리아로 떠났습니다. 떠날 때조차 소록도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편지 한 통만을 남겼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는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를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라는 말이 담겨 있었습니다.
<두 수녀의 마지막 편지>
2023년, 마가렛 피사렉 수녀는 향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꽃다운 20대에 소록도에 발을 들였던 그들은 일흔을 넘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소록도에 머물렀습니다.
소록도의 환자들은 한글을 전라도 사투리로 익힌 두 수녀를 정겹게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매번 상이나 인터뷰 요청은 거절했고, 본국 수녀회가 보내온 생활비마저 환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진료실에 오시는 환자분들 가운데 두 수녀들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느 날 마을 진료를 나갔다가 마리안느 수녀님이 주신 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네에 물렸을 때 쓰는 돌’, 일명 ‘지넷돌’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넷돌’>
소록도에는 지금도 지네가 많은데, ‘지넷돌’은 지네독을 빼준다고 합니다. 지네에 물린 부위를 살짝 째서 피를 내고, 그 위에 돌을 얹으면 독이 빠질 때까지 돌이 스스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독이 충분히 빠지면 자연히 떼어지고, 이후엔 생우유에 3시간 담가두었다가 물로 씻어 재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한센병이라는 편견 너머로 ‘사람’을 바라보았던 두 수녀.
그분들이 남긴 따뜻한 손길과 사랑의 기억은, 지금도 소록도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조용한 헌신을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위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