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한의대 영감록] 지극히 두렵고 결코 긍정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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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대 영감록] 지극히 두렵고 결코 긍정할 수 없는 것

기사입력 2025.07.0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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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이하경

 

[한의대 영감록]은 한의대에서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의학 지식 사이로 흘러나온 영감들을 모아 펼쳐본 시리즈입니다.

 

 

이집트를 여행 중입니다. 이집트는 죽음을 생각하기 좋은 곳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사후세계로 가는 하나의 절차로 인식하고 있었고, 사후세계에 잘 도착해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각종 주문서와 음식, 무기를 관에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그 믿음과 염원이 도시 곳곳에 묻어납니다.

 

그러나 이집트에 직접 와서 만난 죽음의 흔적은 사후세계를 향한 집착이나 이를 위한 공허한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른 허무 따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라미드의 돌은 규칙적으로 배열된 각진 조각이라기보다는 죽음 앞에서 타오르는 두려움의 불씨로 녹아내리는 마시멜로와 닮아 보였습니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 통로를 가득 채운 미라들은 저마다 얼룩지고 발가락과 머리카락이 튀어나와 있어, 관 속에 완벽한 형태로 박제될 바에는 땅 위에서 초라하고 부박한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듯했습니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지난한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전쟁에서 전사한 아킬레우스를 귀향 도중 저승에서 만나자, 오디세우스는 그가 영웅으로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죽어서도 사자들의 강력한 통치자로 지내고 있으니 죽었다는 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합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곧장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다스리느니 나는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뱅이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하고 답합니다. 이처럼 죽음은 가장 고상한 경지에서도 두렵고, 초연한 마음을 매 순간 풍화시키는 모래바람 같은 존재입니다.

 

근래에는 인간의 존엄과 품격을 지키며 준비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자는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관련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며 웰다잉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홍보하고, 성년후견제도 등을 재검토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저는 '죽음의 질' 향상을 위한 이러한 제도적 개선에는 동의하지만, 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 웰다잉 사업은 경계하게 됩니다. 죽음학의 도입을 주장하거나 웰다잉을 홍보하는 이들은 웰다잉을 통해 연명의료 여부, 장례의 형태, 장기와 유산의 처리 방식 등에서의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이 자기 죽음을 온전히 결정할 수 있다는 또 다른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지구 위에 잠시 머물렀던 수많은 이들은 그들이 놓인 사회경제적 배경과 문화적 환경 및 유족에 대한 고려 속에서 죽어 왔습니다.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권리'는 오히려 개인이 자신의 삶을 넘어 죽음까지 책임지고 우수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마음챙김 명상이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감정 조절 문제로 돌린다는 비판을 받았듯이, 웰다잉 역시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죽음 문제의 책임을 개인의 선택에 떠넘길 위험이 존재합니다. 죽음의 결정권이 온전히 그리고 평등하게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 웰다잉이 과연 더 나은 죽음으로 이어질지 의문이 남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웰다잉에 대한 불안으로 치환되었을 뿐이며, 그 불안감을 이용해 죽음마저 상업화되는 게 아닐지 우려됩니다. 웰다잉이 보험 혹은 장례 사업의 확장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라, 망자가 아케론 강을 건너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뱃사공인 카론에게 줄 동전 한 닢을 망자의 입에 물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노후 그리고 그 끝의 죽음까지 보장할 비용을 마련하고자 생애를 바쳐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노출되어도 결코 익숙해지기 어려운 죽음을 뒤로 하고, 삶을 긍정하는 여정을 마저 떠나 볼 계획입니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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