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한의예과 조우진
여러분은 자기 불일치 이론에 대해서 아시나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히긴스의 자기 불일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실제 자기, 이성적 자기, 당위적 자기의 세 가지 자기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 실제 모습, 자신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신념, 자신이 소유해야 할 책이 있다고 느끼는 모습에 대한 신념을 뜻합니다. 이 자기들 사이의 불일치를 경험할 때 불편한 정서(우울, 불안, 낙담, 슬픔)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부를 열심히 하여서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이 이상적 자기이지만 현실은 열심히도 하지 않고 성적도 나오지 못하는 실제 자기의 경우 학생이 불편한 정서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 것입니다. 모두들 한 번 씩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되고 싶은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달라 괴로운 경험을 말입니다. 위에서 든 예시가 저의 경험입니다. 그리고 저의 이상적 모습은 실체합니다. 예? 제가 그 모습이 되었기에 존재한다는 뜻이냐고요? 그럴 리가요. 성공했다면 이 글을 적지 않았겠죠. 아무튼 마치 눈에 보이고 존재하는 유명 프로게이머나 아이돌을 보고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저는 ‘형’과 같이 되고 싶었습니다. 형이 저의 이상적 자기였습니다. 이웃집 형이나 친한 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가 이어진 친형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형을 동경하고,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저를 욕해도 형을 욕하면 참지 못할 정도로 형을 존경합니다. 제가 아무리 많은 이야기해도 여러분에게 감이 잘 잡히지 않겠죠. 그러니 길게 설명하지 않고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괴물’입니다.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인간의 영역인가 싶을 정도로 대단하여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슬프게도 저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성과가 안 나오면 포기하고 싶어지고 과제는 미루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형이라는 괴물을 이상이자 목표로 삼아버린 이상 저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저주가 시작된 시작점이겠죠. 바로 제가 저 자신을 부정해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저의 3가지 자기는 중학교 1학년 무렵까지는 좋았겠죠. 그러나 중학생 2학년 1학기 초에 먹은 마음이 모든 것을 바꾸었죠. 뒷내용은 뭐. 세세히 말하면 너무 생생하기도 하고 개인정보이기도 하니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죠. 지구에 사는 소년A이 달에 사는 소년B가 멋있게 보였습니다. 그곳은 소년A에게 낙원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고 달로 간 소년A는 도착하고 얼마 있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그곳에는 산소가 없다는 것을 말이죠. 소년B는 달의 주민이라서 산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소년A는 숨을 잘 쉬지 못해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다시 지구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소년B처럼 이곳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괴로워하면서 5년의 세월을 달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깨닫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지구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5년 만에 다시 지구로 돌아온 소년A는 처음에는 체념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밤마다 보이는 달을 볼 때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아직도 그곳에 갈수만 있다면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대충 저에 대해서 아셨겠죠?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상과의 괴리에서 절망하지만 포기는 못하여 괴로워하는 삶을 보내왔다는 것이죠. 경험과 이론이 증명하듯이 이상과 현실이 다르면 스스로가 괴로워집니다. 또한 괴로운 상태에서 발전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죠. 그래서 의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발전의 시작이라고들 말합니다. 이때까지 부정해왔다면 지금이라고 자기를 사랑하고 받아들여라. 정말로 좋은 말입니다. 실천하기 어렵지만 해낸다면 앞으로가 편해지겠죠. 그러나 저는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긍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 난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 ‘얘 혹시 힘든 고등학교 생활 후에 우울증에 걸린 상태에서 적은 거 아니야?’ 하실 지도 모르지만 괜찮습니다. 그럼 위의 말에 대해서 설명하면 저는 제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만약 스스로를 긍정하였다면 저는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건강했을 겁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배가 아프지 않고 오래 앉아있을 수 있고 운동도 좋아해서 지금보다 정상체중에 가까웠을 겁니다. 작가를 꿈꾸며 글을 쓰는 학원에 다녔을 지도 모르겠군요. 거기서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어쩌면 연애를 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저는 그 길을 고르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달에 가기로 결정해버린 거죠. 낙원을 믿으면서. 아마 지금 ‘그래서 네가 너를 긍정하는 것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건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죠. 질문을 드릴게요. 몇 번 일 것 같나요?
1. 원래의 나는 역겨워서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 없어서
2. 부정적 삶이 습관이 되어서 긍정적으로 살기 힘들어서
3. 나의 성공이나 삶의 근간이 달에서 사는 것이었기에
정답은 두구두구두구. 3번입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저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삶은 과정은 죽도록 괴로워도 성과는 꽤 좋습니다. 한의대에 올 수 있다거나 이런 모습이 주위에 좋기 보인다거나 말이죠.
달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이미 저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저번 글과 다르게 이번 이야기에는 포부는 없습니다. ‘그러니깐 이번에야 말로 이상의 모습처럼 되겠어!’라거나 ‘그럼에도 나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겠어!’와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지 20살 저의 아직은 미숙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조명하는 글 일뿐입니다.
그래도 한 마디 덧붙여서 하자면
“제가 긍정하는 저의 모습은 지구(자기)를 포기하고 달(형)에 머무르기를 포기 못하는 모습뿐이겠죠.”
* 메디콤 뉴스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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