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 대창면 보건지소, 한방 공중보건의, 조우현
歧伯曰, 持鍼之道, 欲端以正, 安以靜, 先知虛實, (중략)
기백이 말하였다. 침을 놓을 때는 반드시 태도를 단정히 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며, 먼저 증후의 허실을 나눈 다음, (중략)
如臨深淵者, 不敢墯也. (중략) 神無營於衆物者, 靜志觀病人, 無左右視也.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한다는 것은, 침을 놓을 때 조금도 해이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략) 정신을 다른 사물에 흩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침을 놓을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를 안정시켜 환자를 살피고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구절은 영추 <邪客>에, 두 번째 구절은 소문 <鍼解>에 적힌 내용이다. 둘 다 치료자가 침을 놓을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논하고 있다.
황제내경에서는 자침할 때 補할 것인지 瀉할 것인지, 얼마나 깊이 찌를 것인지, 득기감을 느끼는지 등을 고려하라고 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해당 조건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뿐더러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는 마음은 의사의 마땅한 태도이기 때문에 위의 구절들을 적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 이유의 전부일까.
예과생 때 한 교수님이 수업시간 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셨다. 같은 위치, 같은 깊이로 침을 놓아도 침을 놓는 한의사가 달라진다면 치료 효과가 달라진다고. 또한 같은 한의사라도 그날의 컨디션과 마음가짐에 따라 침의 효과는 상이하다고 하셨다. 즉, 똑같은 혈위에 침을 놓더라도 더 잘 치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며, 시술자의 컨디션이 좋을수록, 또 정성을 다하여 침을 놓을수록 치료가 잘 된다는 뜻이다.
교수님은 原典에서 말하는 氣가 실존한다고 주장하시며, 氣를 통해서 이 현상을 설명하셨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시술자의 氣가 충만하기에 더 효과가 좋은 것이며, 정성을 다하여 침을 놓으면 침 끝에 氣가 더 모이고 그로 인해 치료가 더 잘 되는 것이다. 한의사에 따라 침 효과가 상이한 이유는 각 한의사마다 침 끝에 모으는 氣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셨다. 그러면서 유독 氣를 잘 빼앗는 환자가 있다고, 그럴 때는 본인의 기운이 쭉쭉 빠진다고 부연하기도 하셨다.
교수님의 氣에 대한 생각은 차치하고, 치료자의 마음가짐이 환자의 예후에 영향을 미칠까? 같은 치료를 하더라도 누가 치료하는지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달라질까? 환자와의 라포(rapport)와 플라시보 효과로 설명이 가능하다. 환자는 바보가 아니다. 낫게 하고자 하는 의사의 마음은 환자에게도 전달된다. 이러한 치료자의 마음을 환자가 느끼는 것은 그 자체로 라포 형성에 도움을 준다.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을 때보다 강한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시술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치료 효과가 차이 나는 이유도 똑같은 논리로 해석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환자와 라포를 더 잘 쌓는다. 신뢰를 더 잘 주며, 그에 따라 더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치료에 대한 기대심리가 증상을 호전시키는 현상인 플라시보 효과와 대비되는 의미를 가진 노시보(nocebo) 효과도 있다. 노시보 효과는 치료에 대해 환자가 부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 그 치료 효과가 원래보다 더 안 좋게 나타나는 현상을 뜻한다. 옛사람도 노시보 효과를 간접적으로나마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마천 사기 <편작열전>에 따르면, 고대의 명의 편작은 어떠한 명의도 고칠 수 없는 6가지 불치병 환자를 언급했다고 한다. 그중 마지막 6번째는 信巫不信醫인 사람으로, 무당은 믿으나 의사는 믿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환자-의사 라포와 플라시보 효과로 교수님의 주장을 설명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교수님의 氣를 통한 설명을 들어보면, 환자-의사 라포를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후, 모든 환자의 눈과 귀를 가린 후 같은 치료자가 각기 다른 마음으로 침을 놓는다고 가정하자. 한 그룹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침을 놓고, 다른 한 그룹은 환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침을 놓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고치고자 하는 마음은 환자와의 눈맞춤과 대화를 통해 전달될 것인데, 이 경우 환자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환자-의사 라포가 강할수록 치료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질 것이기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도 증가할 텐데, 두 그룹 모두 라포가 거의 형성되지 못하므로 치료 효과는 두 그룹 모두 비슷하게 나올 것이라 유추 가능하다. 하지만 氣 가설에 따르면 환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침을 놓은 그룹이 치료 효과가 더 좋을 것이다. 교수님은 후자를 지지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교수님의 氣 가설이 맞다면 마음의 힘은 꽤나 강력하다. 유사과학 같은 허무맹랑한 생각이기만 할까?
한의대를 졸업하고 기능의학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다. 기능의학은 질병의 주된 원인을 찾은 후 그 원인에 중점을 맞춰 환자를 치료하고 안내하는 의학으로, 標治가 아닌 本治를 추구하는 한의학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 의학이라 흥미가 생겼다. 기능의학을 전반적으로 다룬 김덕수 박사의 책 ‘기능의학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를 읽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염력에 관한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실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갓 태어난 병아리는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는데, 이 특성을 이용하여 연구자들은 병아리 15마리가 무작위로 움직이는 기계를 어미로 각인되게 만들었다. 실험 A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기계를 작동시켜 기계가 움직인 경로를 추적하였다. 실험 B에서는 각인된 병아리 15마리를 방 한쪽에 고정한 후 기계를 작동시켜 기계가 움직인 경로를 추적하였다. 실험 A에서는 그림 A와 같이 기계가 무작위로 이동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실험 B에서는 그림 B의 예시와 같이 기계가 병아리 근처에서 움직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는 80회의 실험 B 중 71%에서 반복되었으며,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다(p<0.01).

그림 A, B의 선은 무작위로 움직이는 기계가 움직인 경로를 나타낸다.
해당 실험이 담긴 논문의 제목은 “Psychokinetic Action of Young Chicks on the Path of An Illuminated Source”로, 아래 QR 코드로 논문의 초록을 확인할 수 있다.
QR 코드
실험의 병아리들은 어미를 애타게 불렀을 것이다. 그 울음소리의 기저에는 어미가 더 가까이 왔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병아리의 바람은 기계에 닿았고, 무형의 힘으로 작용하였다.
이 병아리-기계 실험은 마음의 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실험 결과다. 하지만 이런 실험 결과를 무시할 수도 없다. 인간은 아직 우주의 전모를 알지 못한다. 오늘날의 지식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백히 실재하는 현상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과학적인 자세가 아니다.
마음의 힘이 플라시보 효과 이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더 탐구되어야 하며, 아직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주제이다. 하지만 적어도 치료자의 마음가짐이 환자의 예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환자를 마주할 때 의사의 마음과 태도는 중요하다. 이를 옛사람들은 알고 있어 침 놓을 때의 마음과 태도 또한 강조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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