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드 (대신만나드립니다)
메건 오로크 저, 진영인 역, 부키
이 책은 저자인 메건 오로크가 알 수 없는 만성질환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고통받으며, 태풍의 눈을 찾으려 애썼던 사투의 기록이다. 이야기는 저자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의 ‘전기 충격’과 같은 극심한 통증에서 시작된다. 그때 저자는 이것이 긴 고통의 서사의 서장이었음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가 당시 만났던 의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반복되는 증상으로 찾은 수많은 의사들은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이유로 병의 원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단순한 월경통이나 빈혈로 여겼다. 한참 뒤 자가면역성 갑상선염(하시모토병)이라는 진단명을 얻어낼 수 있었는데, 이는 그 의사가 여타 의사와 달리 자가면역질환의 가족력까지 문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에 따른 치료 후에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악화와 재발을 이어갔다. 수많은 진단과 치료가 저자의 몸 위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궁내막증, 라임병, 체위성기립빈맥증후군,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등의 진단이 흐릿하게 새겨진다. 하지만 이후에도 명쾌한 해답은 결코 주어지지 않는데, 라임병 진단을 고려해 항생제 투여를 이어나가야 할지, 자가면역질환이 악화될 것을 고려해 항생제 투여를 중단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식이다. 책의 결말에도 반전은 없다. 만성질환은 저자를 끝없이 괴롭히고, 엄격한 생활 관리로 피로와 통증을 달래며 사는 삶이 이어진다.
저자는 한 손으로 문학을 다른 손으로 의학 지식을 잡고 병을 탐구하러 떠난다. 문학에서 질병이 다뤄져 온 방식을 인용하며 자신이 놓인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최신 의학 지식을 통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자 고군분투한다. 이는 저자가 현대의학의 한계와 결점에 저항하며 스스로 방어하는 수단이 되는데, 만성질환은 여전히 차별과 선입견, 거부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까닭이다. 예컨대 의사들은 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 특히 여성 환자일 때 건강염려증과 심리적 문제, 단순 피로라고 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가면역질환이 여성에게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의학계의 구조적 편견은 자가면역질환의 진단이 더욱 늦어지게 할 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라임병의 사례에서 환자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의학계의 태도가 의학적 비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진드기 매개 질병인 라임병은 황소 눈 발진과 열, 동통 등의 특징적 증상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는 진단이 명확한 질병에 속했다. 이를 바탕으로 독시사이클린 등의 항생제를 초기에 처방하는 치료적 접근도 정립되었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현장은 검사 결과 양성임에도 전혀 발진이 나타나지 않는 환자들과 특징적 증상이 있는데도 검사상 음성인 환자들로 가득했다. 라임병 확진 후 독시사이클린 치료를 받았음에도 호전되지 않는 환자들은 스스로 ‘만성 라임병 환자’로 정의했다. 이에 라임병 유행 지역의 가정의들이 연구를 거듭하여 ‘국제라임병및연관질환협회’를 결성하여 라임병 검사의 한계를 지적하고 라임병의 만성화 가능성과 광범위한 형태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많은 라임병 학자들은 여전히 만성 라임병을 인정하지 않고 타 질환이 오인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지속적 피로, 브레인 포그와 관절통이 일반인과 라임병 환자에게 유사한 비율로 발생한다는 점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흐름 속에서 환자들은 ‘라임병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거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만성피로증후군, 섬유근육통, 우울증으로 환자들의 증상을 압축하는 적대 어린 시간 속에서, 만성 라임병에 대한 연구는 진전되지 못하였고 수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현대의학 연구의 최전선에 놓인 질병일수록 이렇게 억압과 오해 속에서 환자들은 고통받게 되는데, 코로나 후유증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한 까닭에 더 널리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자는 희망을 찾는다.
지난한 ‘내 병에 이름 붙이기’ 여정 끝에, 저자는 도리어 단일한 진단이 부적합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진단은 치료의 단서를 찾는 기회가 되어줄 뿐이며, 수많은 치료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불확실성이라는 특성만이 굳게 남는다. 심지어는 그 황당함을 인식하면서도 채혈한 혈액을 자외선에 노출 후 산소와 혼합해 재주입하는 오존 치료까지 시도하게 되는데, 반복되는 기대와 좌절의 사이클은 불확실성을 수용하게 만든다. “변함없는 고통이, 아마도 결국에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때때로 하게 만드는 기복 있는 고통보다 더 나은 게 아닐까? 그거야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분명 다르지. 말하자면? 인내해야 하는 자한테는, 성급함을 최소화하기.”*
자기와 비자기를 구별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은 자아와 관용이라는, 당시 과학계에서 쓰이지 않던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자가면역질환은 그 이전부터 자기 자신과의 갈등으로 은유되며 정체성을 오해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은유의 역사 속에서 자가면역질환은 개인의 문제가 되어 환자는 병의 원인을 스스로에 대한 윤리적 징벌 및 관리 태만에서 찾게 되고,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사회적, 환경적 요인은 멀어진다. 환자는 끝없이 뻗은 고통의 길 앞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스스로 의심하고 책망하지만, 그렇게 발밑을 파내는 행위는 자신을 카프카적인 미궁 속으로 빠트릴 뿐이다.
저자는 남편인 짐이 자가면역질환자를 돌보고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질병을 홀로 앓고 있으며 그 누구에게도 충분히 이해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환자는 질병 자체로부터 한 번, 그리고 경청해 주는 이 없는 세상으로부터 또 한 번 고통받는다. 진단의 한계를 인정하고 환자의 증상에 경청하는 것은 단순히 환자를 위로해 주는 것을 넘어, 보다 정확한 치료 방식의 모색으로 이어진다.
한의대생 독자로서 대체 의학이 등장하는 부분을 자연히 눈여겨보았다. 저자는 침술 치료를 통해 자궁내막증이 완화되는 효과를 얻었고, 수많은 의학 논문과 경험담을 탐독하며 각종 대체 의학의 접근 방식과 임상적 의의를 습득했다. 대체 의학의 전체론적 시각이 만성질환에 더 적합하며 실제로 통합 의사들이 더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 저자는 그것이 틈새시장 속 일종의 경영 모델로 기능하고 있을 가능성을 꼬집는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질병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는 서사의 유혹을 거부하는 저자의 강건한 태도이다. 그러한 저자의 결심은 서문에서부터 책 전반에 걸쳐 계속되고, 마지막 장에서는 지혜 서사 개념을 전면적으로 다루며 서사 구성의 윤리를 지키고자 다짐한다. 고통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질병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자체에 만족하는 저자의 태도는 역설적인 위로를 준다.
*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사무엘 베케트, 전승화 옮김, 워크룸프레스
한의대생 낙타의 의료인문학 읽기
- 다양한 인문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한의대생 낙타입니다. 잘 쓰인 의료인문학 서적들을 통해 의학의 가치와 틈새, 방법론과 실천을 검토하고자 합니다.
기사 제공: 대신만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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