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2026 화랑미술제: 전통 재료에서 빛나는 현대적 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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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화랑미술제: 전통 재료에서 빛나는 현대적 미감

기사입력 2026.04.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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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지원

 

올해로 44회를 맞는 화랑미술제가 48vip 오프닝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화랑미술제는 국내 주요 화랑들이 참여해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한국 최초의 아트페어다. 9월에 열리는 키아프는 국내 갤러리 뿐 아니라 해외 갤러리의 참여도가 높아 좀 더 국제적인 성격을 띈다면, 화랑미술제는 국내 갤러리들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올해는 169개 갤러리가 참가해 역대 최다 참여를 기록했으며 개인적으로는 블루칩 작가들의 대작보다 신진 작가들의 약진이 더 흥미로웠다.

 

시간 관계상 모든 부스를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올해도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 작가들이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작업들은 공통적으로 우리나라 전통 재료들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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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로 작업하는 금속공예가: 유진구

부산의 대표적 갤러리 중 하나인 피카소 갤러리는 금속공예가 유진구의 자개 작품을 선보였다. 대표작인 <Wave- Poem of Light>는 나무판을 물결무늬로 조각한 다음 바탕색을 칠하고 그 위에 자개를 붙인 작품이다. 제목을 보지 않더라도 재료의 물성만으로 석양이 드리운 바다의 영롱한 물빛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의 움직임과 은은하게 번지는 무지개빛 색채, 그리고 자개를 끊어 이어붙인 섬세한 공정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자개는 얇게 간 조개나 전복, 소라 껍데기를 가공한 것인데 서양에서도 mother of pearl이라는 이름으로 가구나 공예품에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옻칠을 한 기물 위에 자개 문양으로 장식한 나전칠기는 특히 고려시대에 절정을 이루어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미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부모님 세대의 자개 장롱 이미지 때문에 한때 촌스럽다고 평가절하되었던 자개는 최근 들어 한국적인 럭셔리 소재로 재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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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디자이너에서 옻칠 작가로: 채림

학고재 갤러리는 주얼리 디자이너로 시작해 옻칠 회화로 본인만의 작품세계를 정립해 가고 있는 채림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였다. 초기에는 화면 위에 보석을 부착하는 보석 회화작업을 진행했으나 옻칠 지지체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옻칠의 매력에 빠져 더 깊은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작업에서는 보석이 사라지고 옻칠과 한지로 표현한 한국의 풍경화를 선보인다. 이번에 선보인 <대지-The Good Earth> 연작은 작가의 대표 작업인 주름 산수색동 산수가 결합된 신작이다. 산의 굴곡진 표면은 한지의 주름으로, 겹겹이 포개진 능선은 색동으로 표현했다. 한국적인 소재이지만 옻칠 특유의 고급스러운 광택과 세련된 색감은 동시대적인 미감으로도 손색이 없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개막 이틀째에 이미 대부분의 작품이 판매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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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기록하는 시간과 행위: 조원재

조은갤러리는 백윤조, 박보선, 성률, 회화 작품 외에도 다양한 조형 작품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조원재 작가의 물방울 형태의 도자 작업은 다양한 크기와 컬러의 배치를 통한 감각적인 공간 구성으로 더욱 돋보였다. 조원재 작가는 한예종을 졸업하고 우리나라의 조선백자와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제작된 도자 작품들의 그 은은한 빛깔과 단아한 형태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항아리가 자연히 연상된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곡면과 문양을 배제한 형태는 미니멀한 감각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겨울 우연히 방문한 갤러리에서 작은 소품을 구입했던 작가라, 이번 화랑미술제에서 다시 만나 더욱 반가웠다.

 

작품 앞에서 던져보는 질문

화랑미술제는 결국 시장이기에 잘 기획된 전시처럼 깊은 사유나 통찰의 장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작품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쌓여간다는 것과 같다. 나는 어떤 색을 좋아하는가. 어떤 질감을 선호하는가. 거친 형태에 끌리는가, 아니면 부드러운 선에서 안정감을 느끼는가.

 

이 질문들에 하나씩 답해가다 보면 라는 존재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한 감각을 얻게 된다. 어쩌면 한국적인 것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유 역시 흔들리지 않는 나의 정체성을 확인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 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작가들의 시도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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