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상가나 오피스텔 같은 집합건물에서는 관리단을 구성해 관리인을 뽑습니다. 이때 보통 '머릿수(구분소유자 수)'와 '지분(의결권)' 두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데요. 만약 면적을 많이 가진 소수의 사람만 찬성해도 관리인을 뽑을 수 있도록 규약을 정했다면 어떨까요?
최근 대법원은 특정 소수에게만 유리하게 짜인 이런 규약이 왜 위험하고 무효인지에 대해 의미있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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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의 개요 이 사건 건물은 지하 6층, 지상 23층 규모로, 상업시설 40개와 업무시설 20개의 전유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11년경 상업시설 전체를 임시로 신탁받은 회사와 업무시설 전체를 매수한 은행, 단 2명의 구분소유자가 합의하여 관리단 규약을 제정하였습니다. 해당 규약에는 관리인 선임 시 집합건물법상의 '구분소유자 과반수' 요건을 배제하고, 오직 '의결권의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결권의 과반수 찬성'만으로 의결할 수 있도록 하는 정족수 규정이 포함되었습니다. 이후 전체 면적의 77.52%를 소유한 업무시설 소유자 1명의 찬성만으로 관리인이 선임되자, 이에 반발한 상업시설 소유자들이 해당 규약과 결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원심법원의 판단 (서울고등법원 2022나2043685) 원심은 이 사건 정족수 규정이 유효하다고 보아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집합건물법 제38조 제1항이 '법 또는 규약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규약을 통해 '구분소유자 과반수 요건'을 배제하고 '의결권의 과반수'만으로 결의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이 곧바로 법 위반이나 사회질서 위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하며 이 사건 결의를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23다222949)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며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집합건물의 규약은 그 내용이 강행법규에 위배된다거나 구분소유자의 소유권을 합리적인범위를 벗어나 과도하게 침해하여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볼 정도로 현저히 타당성을 잃은 경우에는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규약은 실질적인 수범자인 상업시설 구분소유자들의 의사가 배제된 채 제정되었고, 이 사건 정족수 규정으로 말미암아 상업시설 구분소유자들의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되는 결과가 초래되었으므로, 사회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은 것으로서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 |
이번 판결은 다수결의 원칙이 자칫 '소수의 횡포'로 변질되는 것을 막은 판결입니다.
첫째, 실질적인 이해관계자인 수분양자들의 의사를 배제한 채 분양자 측이 일방적으로 만든 규약의 효력을 엄격히 따졌습니다(제정 과정의 정당성).
둘째, 집합건물법이 정한 '구분소유자 수'와 '의결권' 요건 중 하나를 임의로 삭제하여 특정인에게 의결권을 집중시키는 것은 위법합니다(이중 정족수의 중요성).
셋째, 면적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소유자들의 의사를 영구적으로 배제할 위험이 있는 규정은 사회질서 위반으로 무효가 됩니다(소수 권리의 보호).
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집합건물 관리의 투명성과 형평성을 바로잡은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집합건물법이 '구분소유자 수'라는 머릿수 요건을 둔 이유는, 자본의 논리(면적 비율)에만 치우쳐 다수 구성원의 인격적 의사가 묵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규약이라는 사적 합의의 형식을 빌렸더라도 그것이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면 법원은 마땅히 이를 바로잡아야합니다. 이번 판결은 '의결권 77%의 힘'보다 '법이 정한 공정한 절차'가 우선함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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