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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과 해변가 사이에서

기사입력 2026.02.2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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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남부통합보건지소 공중보건의 김제관

 

최근에도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자주 하던 생각이 있다. 나는 과연 어느 정도로 이 사물과 현상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분명 어떤 사람은 내 이해의 지평을 넘어 한 층 더 깊고 심오한 세계를 보고 있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내가 보는 것의 표면만을 담고 있을 것이다.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이다. 똑똑한 사람을 표현하기에 매우 직관적이다. 하나의 단초만 가지고도 그 너머의 세상을 엿볼 수 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무언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은 현상을 보고도 새로운 것을 알아내지 못할 때 답답하고 누군가는 나와 같은 것을 보고도 여러 영감을 얻을 걸 생각하면 부럽다. 가끔 조촐한 성과에 자아도취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적절한 수준의 이해와 성취를 바탕으로 기뻐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여기가 우물 안인지 해변가인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잊을만할 때쯤 다시 드는 생각이다. 어떤 강한 확신에 차 있거나 명령조의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감탄과 의문이 동시에 든다. 물론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감탄과 의문의 비율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그 분야에 관한 통찰이 깊은 사람일수록 감탄이며 무지하다고 생각될수록 의혹이 생긴다.

이를 테면 그 정치인의 그런 행보는 분명 후계를 위한 수작이야. 뻔히 보인다니까?”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물론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나, 변수는 많고 다른 해석의 여지도 무궁무진하다. 또 표면상 드러난 정황들을 제외하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잦았던 것도 아니다. 마음 속에서는 그 해석에 관한 감탄보다는 편협한 분석이라는 의혹이 자리잡는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을 묵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의혹은 더더욱 짙어진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고 고민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 그 복잡한 정치 역학을 어떻게 이해한다는 말인가?

외출 준비를 하다가 너 그 옷 안 어울리니까 벗어.”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자. 내 패션에 대한 타인의 의견으로 충분히 받아들일만 하다. 어떤 점에서 어울리지 않는지 참고한다면 한 층 더 발전한 스타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벗으라니, 내가 어떤 의도로 그 옷을 입었는지 분명 모를텐데 상당히 무책임한 발언이다. 바깥의 기온을 고려해 껴입었을 수도, 그 옷을 넣을 곳이 없어 입고 가야 할 수도, 내 눈과 내가 만날 사람의 눈에는 예뻐 보일 수도, 아니면 내 판단이 맞고 본인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생각에 확신을 갖고 명령을 내린다는 건 분명 이 사항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란 의문이 든다.

 

조금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자신감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게 있다. 더닝과 크루거라는 사람들이 연구해 만든 이론이라는데, 정작 본인들은 이렇게 명명한 바가 없고 심지어 연구 결과도 많이 왜곡돼 퍼져 있지만 어쨌든 골자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저평가한다.’라는 것이다. 연구 자체도 코넬대 학생들 일부를 상대로 한 게 전부이기 때문에 진리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내 짧은 경험이나마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는 사람들의 특성이 있었다. 모두가 갖는 공통점은 아니지만 보통 자기애가 강하거나, 관련 분야를 깊이 공부하지 않고 사유와 통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건 내 얘기이기도, 내가 봐온 사람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마치 그 분야의 대가라도 되는 양 자신감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해당 분야에서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본다면 기가 찰 노릇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정말 진리인지, 저 사람의 행동이 정말 틀린 것인지 확신을 갖기가 어렵다. 물론 남을 해치지 말라든가 공공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라는 등 공리로 받아들여지는 부분들이 있지만 복잡한 이해와 입장 차이가 얽혀 있는 일이거나 전문지식과 노하우가 필요한 일일수록 정말로 판단이나 정리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도, 현실 세상에서도 너무나 쉽게 본인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생각보다 자주 보고 있다. 사실조차도 왜곡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어떻게 보면 인지상정이지만 본인이 언제나 사실이나 기억, 상황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발언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걸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겸손은 그냥 미덕이 아니라, 내가 우스워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겸손하지 못한 발언을 하는 중인 것 같다는 모순이 있다.

 

한의사로서의 능력을 고평가했던 순간들

노인들의 만성 질환도, 지인들의 건염과 같은 쉬이 낫기 힘든 질환도 한두 번의 침치료로 극적인 통증 완화 및 가동범위 회복을 이룬 적이 있다. 오랜 무릎 통증으로 종종걸음을 걷고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던 노인들의 허벅지 근육과 무릎 내측의 인대, 무릎뼈 아래쪽 인대와 정강이뼈 안쪽의 힘줄을 치료했더니 어제는 너무 잘 잤다며 고마워하시는 경우가 꽤 있었다. 요새는 걸음도 잘 걷고 무릎도 굽혀진다며 웃는 얼굴로 선물까지 가지고 오신다. 내가 엄청난 능력을 가져서 그랬던 걸까 하며 잠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아닌 누가 했어도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다. 어차피 무릎 통증의 대부분은 실제 연골이 닳아 없어져서라기보다 주위 연부조직의 문제이며 이는 무릎 관련한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지인의 골프 엘보에 손목 굴곡근군 및 상완삼두근, 소흉근과 소원근을 치료했더니 거의 일도쾌차해버렸다. 이건 사실 문제가 될 수 있는 근육들을 모두 치료하다 보니 효과가 좋았으며, 또 건염과 골극 형성 등 심각한 단계까지 이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였다. 정형외과나 통증의학과에서 수도 없이 주사치료를 해도 낫지 않았다고 한 걸 내가 한 번에 낫게 했으니 콧대가 올라갈 뻔 했지만, 사실 골프엘보로 진단하고 힘줄 부착부만 치료하다 보니 효과가 없었던 거지 진단 범위를 근육으로 넓히기만 한 내 치료가 대단했던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근육학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할 수 있었던 치료였다.

요새는 난임에도 관심이 많이 생겼다. 경주의 모 한의원 난임치료가 그렇게 적중률이 높다길래. 처음에 그 얘기를 듣고 어차피 난임에 쓰이는 한약재나 처방들이 정해져 있는데 거기서 크게 벗어날 게 있나, 내가 해도 비슷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가 낳은 자신감이다. 현대의학에서의 난임치료는 보통 난자와 정자를 만나게 해서 착상까지 직접 유도하는 식이다. 시험관도, 인공수정도 다 그렇다. 정작 산모의 자궁과 난소, 생부의 정자와 정소 상태에 대해서는 방점을 찍지 않는다. 아버지 쪽의 문제가 크지 않다면 그냥 어머니의 몸 상태와 자궁난소 혈액순환을 끌어올리면 임신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기는데, 이 와중에 다른 한의원 원장님이 그냥 그렇게 하면 임신이 된다며 본인도 지금까지 난임 치료 케이스 중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하니 더더욱 자신만만해진다. 물론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자신감과 자기 의심 사이

자신감도, 자기 의심도 모두 필요하다. 우물 안도 아늑하니 쉬기 좋다. 해변가는 넓게 볼 수 있어서 좋다. 현실의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밖을 나갈 수 없겠지만, 우리는 충분히 왔다갔다할 수 있다. 하나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잘 아는 사실이거나 자신있는 분야라도 너무 강한 확신이나 지나친 타인 통제 등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 더 발전하면서도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믿고 밀어붙이는 힘도 분명 필요하겠으나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놓친게 없나 확인하는 게 확실하다.

항상 주눅든 사람도, 꼰대도 매력적이지 않다. 모든 걸 아는 사람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에 감사하며 모르는 사람에게 넌지시 귀띔해주는 정도가 좋겠다. 나에게도 겸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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