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우울증, 마음의 병인가 장의 병인가 - 장-뇌 축과 脾胃이론이 만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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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마음의 병인가 장의 병인가 - 장-뇌 축과 脾胃이론이 만나는 지점

기사입력 2026.01.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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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진다연

 

우울증은 오랫동안 마음의 병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신경과학과 미생물학의 발전은 이 오래된 인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울증은 과연 뇌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장에서 시작되는 문제일까. 현대 의학의 답은 단순하지 않다. 우울증은 뇌와 장, 그리고 장내 미생물이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 즉 뇌미생물 축(microbiotagutbrain axis)의 통합적 부전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울증은 어느 한 기관의 이상이 아니라 여러 생물학적 축이 동시에 흔들리는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통합적 시각이 한의학의 오래된 이론, 특히 비위(脾胃) 이론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 장에서 시작되는 감정 조절의 과학

현대 신경과학이 밝혀낸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 부르는 세로토닌의 90~95%가 뇌가 아니라 장에서 생성된다는 점이다. 장에 존재하는 장크롬친화세포는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을 이용해 세로토닌을 합성하며, 이 과정은 장내 미생물의 직접적인 자극을 받는다.

동물실험 연구에서 미생물이 없는 무균 쥐는 정상 쥐에 비해 뇌의 세로토닌 수치가 현저히 낮았고, 스트레스를 받은 쥐에게 건강한 미생물을 이식하자 뇌와 장 모두에서 세로토닌 수치가 유의하게 증가했다. 이는 장내 미생물이 단순한 소화 보조자가 아니라, 감정 조절의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장에서 생성된 신호는 미주신경을 따라 뇌로 전달된다. 장의 세로토닌은 미주신경의 수용체를 자극해 연수의 핵난소체로 전달되고, 다시 정서 조절의 중심인 배등쪽 봉선핵을 조절한다. 결국 장의 상태가 뇌의 감정 회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우울증

대규모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에서는 장내 미생물의 종다양성이 평균 25% 이상 감소해 있으며, 세로토닌 생성과 관련된 유익균 역시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우울증 환자의 장내 미생물을 건강한 동물에게 이식했을 때 우울 행동이 유발되었고, 반대로 건강인의 미생물을 이식하면 증상이 완화되었다. 이는 장내 미생물 변화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장내 미생물은 세 가지 주요 경로를 통해 우울증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미주신경을 통한 신경 신호 경로, 둘째는 HPA 축을 매개로 한 내분비 경로, 셋째는 면역 및 대사 경로다. 특히 장내 미생물이 식이섬유를 분해해 생성하는 단쇄지방산은 세로토닌 합성을 촉진하고, 신경 염증을 억제하며, 장벽의 무결성을 유지하는 핵심 물질로 작용한다. 반대로 장내 불균형 상태에서는 염증 물질이 증가해 뇌 염증과 정서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 비위 이론과 현대 과학의 만남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한의학의 비위 이론을 새롭게 조명하게 한다.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비장은 후천적 기의 근원이라 하여, 소화 기능과 전신 기력, 정서 상태를 긴밀히 연결해 왔다. 또한 우울증을 간의 기가 울체되고 비의 기능이 약화된 상태, 즉 간비불화(肝脾不和)로 설명해 왔다.

현대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는 스트레스로 인한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HPA 축 과활성, 그리고 미주신경 신호 저하로 해석할 수 있다. 비위 기능 저하는 곧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붕괴이며, ‘후천적 기는 신경전달물질과 에너지 대사의 총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수천 년 전의 개념이 분자 수준의 과학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의학적 치료가 우울증에서 효과를 보일 수 있는 이유도 보다 명확해진다. 침 치료는 미주신경을 자극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키며,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낮추는 작용을 통해 장뇌 축의 균형 회복에 기여한다. 실제 연구에서는 침 치료가 우울 행동을 유의하게 개선하고, 스트레스 관련 생화학적 지표를 정상화하는 효과가 확인되었다.

한약 역시 소화 기능을 강화하고 염증을 조절하며,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는 약이 아니라, 장 기능과 전신 대사를 조절함으로써 정서 상태를 개선하는 치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울증을 마음의 문제로만, 혹은 장의 문제로만 보는 시각은 이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울증은 뇌, , 미생물, 면역계, 신경내분비계가 얽힌 복합적 시스템의 문제다. 이러한 시스템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약물치료, 식이 중재, 장내 미생물 조절, 그리고 한의학적 치료를 포함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장뇌 축의 메커니즘은, 한의학이 말해온 마음과 몸은 하나라는 명제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비위 이론을 기반으로 한 한의학적 치료는 우울증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우울증 치료의 패러다임은 이제 뇌만을 향한 치료에서 시스템 전체를 회복하는 치료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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