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진다연
의학이 할 수 있는 일이 항상 병을 낫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질병이 회복의 단계를 지나, 더 이상의 치료로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증상이 빠르게 악화되는 시점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를 의료적으로는 ‘임종 과정’이라고 부른다. 회생 가능성이 없고, 시행되는 치료가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한 채 사망이 임박한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을 통해 결정된다.
유사한 정의로 ‘말기 환자’가 있다. 말기환자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고, 증상이 점차 악화되어 수개월 이내 사망이 예상되는 상태를 말한다. 아직 임종과정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질병의 경과 상 남은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신체적, 정서적 부담이 커지는 시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게 된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시행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와 같은 의료를 ‘연명의료’라고 하며, 이는 의학적 시술이나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 연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윤리적인 지적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완화의료와 호스피스의 필요성이 등장한다.
완화의료는 치료를 포기하는 의료가 아니다. 오히려 치료의 목적을 바꾸는 의료다. 더 이상의 의학적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 치료 대신, 통증과 고통을 줄이고 환자가 남은 시간을 최대한 편안하고 존엄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둔다. 신체적 증상 관리뿐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 가족의 돌봄 부담, 삶의 마무리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다루는 것이 완화의료의 핵심이다.
특히 완화의료는 환자 개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환자의 가족 역시 돌봄의 중요한 대상이 된다. 임종을 앞둔 과정에서 가족이 겪는 심리적 혼란과 상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지지하는 것 또한 완화의료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러한 이유로 완화의료는 단순한 의료 서비스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함께 동행하는 의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완화의료의 철학은 한의학의 의료관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한의학은 질병 자체뿐 아니라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와 삶의 균형을 중시해 왔다. 침, 한약, 뜸, 추나와 같은 한의학적 치료는 신체에 과도한 침습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통증과 증상을 완화하고, 환자의 기력과 안정을 돕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침 치료는 암성 통증, 오심구토, 불안 완화에서 임상적 근거가 축적되어 있으며, 심각한 부작용 없이 적용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이는 “치료 효과 없는 연장”이 아닌, 임종의 질을 높이는 의료라는 점에서 완화의료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한의학 기반 완화의료가 제도적으로 인정된 대표적 사례가 바로 동국대학교 분당한방병원이다. 분당한방병원은 2025년 5월 15일, 한방병원 중 최초로 보건복지부로부터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한의학이 단순한 보조 치료를 넘어, 임종과정 환자를 위한 전문 의료체계로 공식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분당한방병원 호스피스 병동은 말기암 환자와 임종과정 환자를 대상으로, ▲통증, ▲호흡곤란. ▲오심구토, ▲변비 등 신체 증상 관리뿐 아니라, ▲심리 상담, ▲가족 상담, ▲사회복지 지원, ▲영적 돌봄을 포함한 전인적 완화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한의사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그리고 불교계 의료기관의 특성을 살린 영적 돌봄 인력이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 팀은, 호스피스의 이상적인 모델로 평가된다.
2025년 9월부터 한방병원 호스피스 병동 진료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 것 역시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는 한의학 기반 완화의료가 개인의 선택을 넘어, 국가 의료 체계 안에서 지속 가능한 공공의료로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임종과정은 치료가 끝나는 시점이 아니다. 오히려 의료의 목적이 ‘연장’에서 ‘돌봄’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동국대 분당한방병원의 사례는 한의학이 이 전환의 중심에서, 임종과정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존엄을 지키는 의료로 기능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완화의료의 영역에서 한의학의 역할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하나의 필수적인 의료적 가능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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