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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의학을 품다

백성을 위한 정조의 의료 정책
기사입력 2025.10.0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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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드(대신만나드립니다)

대구한의대학교 한의학과 이현서

 

 조선 후기, 정조는 백성들이 겪는 의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18세기 후반 서울을 포함한 도성 지역은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다. 상업이 번성하고 외지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늘면서 전염병의 위험 또한 커졌다. 하지만 이런 현실과는 달리, 국가의료기관인 혜민서와 활인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혜민서는 약재 판매 위주로만 운영되었고, 활인서는 환자 격리소라는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지 못했다. 의관들의 부재, 재정 부족, 시설의 노후화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진료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정조는 이러한 상황을 백성을 구하지 못하는 의료 제도의 무능으로 인식했다.

 

 관의료가 무너지자 자연스럽게 민간 약국과 의원들이 빠르게 증가했다. 을지로 일대에 수많은 약국이 생겨났다. 의원들도 각자의 전문 영역을 갖고 활동하며 분과화가 이루어졌고, 이는 전문 진료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민간 의료는 상업적 성격이 강했고, 약값과 진료비 부담은 백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었다.

 

 정조는 이러한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으로 새로운 의서 편찬을 선택했다. 기존의 동의보감이 너무 방대하고 중복된 내용이 많다는 점에 주목한 그는, 요점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경험방을 중심으로 구성된 실용적인 의서 편찬을 지시했다. 강명길을 중심으로 의서 편찬이 이루어졌고, 마침내 1799제중신편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어 반포되었다. 책의 이름부터가 백성을 구제한다(濟衆)”는 뜻을 품고 있다.

 

제중신편은 총 9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맥의 요령부터 약성가까지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 처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정조는 백성들이 병을 키우지 않고 단방(單方)으로도 손쉽게 병을 고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향약(鄕藥) 중심의 약재와 처방을 적극 활용했다. ‘향약은 우리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다. 실제로 제중신편에는 새롭게 83종의 약물이 추가되었는데,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향약이었다. 약재 이름도 백성들이 알아듣기 쉬운 향약명으로 표기하여, 약국이나 의원에 가지 않아도 백성 스스로 질병을 인식하고 치료법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정조는 약물의 성질을 설명하는 데조차도 백성을 배려했다. 제중신편에는 약성가(藥性歌)가 수록되었는데, 이는 각 약재의 효능을 운율 있는 노래로 구성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인삼(人蔘)’의 약성가는 인삼미감보원기(人蔘味甘補元氣) 지갈생진조영위(止渴生津調榮衛)‘이다. 인삼은 맛이 달고 원기를 보하며, 갈증을 멈추고 진액을 만들어 영위를 조화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정조는 문맹이거나 의학 지식이 부족한 이들도 노래를 통해 약효를 익히도록 해,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수 있게 했다.

 

 정조는 질병 앞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했다. 제중신편은 단순한 의학서가 아니라, 조선 후기 국가가 펼친 사회복지의 결과물이었다. 정조의 의학 정책은 이러한 애민 정신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한편 정조 10(1786), 조선의 수도 한양에는 마진이 대규모로 유행했다. 마진은 홍역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아이들에게 많이 발병하며, 고열과 급성 발진이 전신에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전염력이 매우 높으며 현재는 제 2급 법정감염병으로 분류되어 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이 병은 당시 많은 가정에 큰 고통을 안겼고, 이에 따라 정조는 자휼정칙(自恤定則)’이라는 유기아 구휼 정책을 발표했다. 질병으로 인해 부모를 잃거나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백성 한 명 한 명의 생명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정조의 의지가 엿보이는 정책이었다.

 

 정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마진을 포함한 전염병 치료에 필요한 경험 처방을 모아 의학 서적으로 집대성할 것을 명했다. 이 명에 따라 탄생한 책이 바로 정약용의 마과회통, 이원풍의 마진휘성이다. 국왕이 주도하여 편찬된 이들 의서는 단순한 학술서가 아니라, 실제 임상 경험이 집약된 백성을 위한 지침서였다. 특히 정약용의 마과회통, 어린 시절 홍역을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처럼 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저술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기존의 잘못된 홍역 치료법을 비판했고, 조선 최초로 종두법(예방접종)을 소개했다.

 

 정조는 시대에 맞는 의학’, 시의(時醫)’를 강조하며, 민간의 필요와 현실에 근거한 의료 정책을 원했다. 제중신편의 편찬과 보급이 그 핵심이었으며, 정조는 직접 원고를 검토하고 내용을 첨삭했다. 또한 전염병을 막기 위해 책의 집필과 보급을 명했다.

 

 오늘날 한의사는 더 이상 침과 한약만을 다루는 존재가 아니다. 초음파로 진단하고, ICT와 레이저 기기로 치료하며,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한의학이 과거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실용적으로 응답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조 역시 그러했다. 그는 쇠퇴한 관의료를 대신할 방안을 모색하며, 당대 백성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의서를 만들고자 제중신편을 편찬했다. 향약 중심의 처방과 약성가, 단방(單方) 중심의 구성을 통해 의료의 문턱을 낮춘 정조의 실용 정신은, 오늘한의학의 확장성과도 맞닿아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환자를 향한 공감과 실용의 의술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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