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 남부통합보건지소 공중보건의 김제관
영원히 고등학생일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병역의 의무가 반 이상 지나갔고 곧 사회에 던져질 일만 남았다. 내가 십대일 때, 삼십대라고 하면 나에겐 영원히 오지 않을 ‘아저씨’의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순식간이었다. 어딜 가도 성인 취급이고 주위에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이런 혼란스러움도 진작에 끝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내가 적응이 느린 건지, 누구나 이 시기에 이런 감정이 드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나를 포함해 주위에서 다들 연애와 결혼이라는 주제에 전보다 훨씬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생물이라면 으레 거치는 자손 번식의 시기가 온 거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지만 숨가쁘게 축의금을 내다 보면 그래도 결혼은 하는구나 싶다. 물론 혼인 연령대 자체가 높다 보니 많이 낳아도 아이는 한 명 정도 낳는 것 같다. 아이를 낳았든 낳지 않았든 결혼한 커플을 보면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왜 지금의 배우자를 선택했는지, 항상 그게 궁금하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게 남자고 여자인데, 꼭 지금의 배우자여야만 했는지. 먼저 선택해본 사람들의 통찰이나 고심의 결과가 혹시 나에게도 길을 제시해주지 않을지 궁금해서. 그런데 생각보다는 대답들이 신통치 않다. 하긴, 뭔가 날카로운 대답들이 쉽게 잘 나왔다면 요새처럼 이혼 관련 프로그램들이 미디어에서 자주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보통 남자들은 결혼 적령기에 옆에 있는 사람과 크게 부딪치는 게 없길래 결혼을 추진했다고 한다. 보통 여자들은 크게 부딪치는 거 없이 만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결혼식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크게 부딪치는 게 없다는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 알기는 어렵다. 내 경우엔 크게 부딪치는 게 하나 씩은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예민해서인지 아직 결혼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인지 혹은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사람 사이의 일인데, 주관적이고 모호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벌써 결혼식 축가도 네 번째 요청을 받았다. 그만큼 주위에서 결혼을 하는 시기인데, 사연은 다들 천차만별이다. 연애를 자주(?) 하던 형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과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해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의 지인을 통해 만난 사람이었다. 출신성분도 확실하고 걸리는 게 크지 않아 만난 지 100일 정도 만에 결혼을 결심했던 것 같다. 10년 넘게 연애하던 친구는 주위 사람들의 당연히 결혼할 거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부부가 되었고, 한두 번의 헤어짐이 있었지만 누적 5년 이상 만났던 사람과 결혼한 형도 있다. 요즘 사람들의 초혼 연령을 생각하면 지금 결혼한 내 친구들은 결혼이 빠른 편이라, 보통 오래 연애한 사람들이 결혼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어감에 따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늘어날 거라고 본다.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또 나는, 어떤 기준으로 이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고 또 하게 될까?
직접 물어보거나 혹은 관찰해보았다. 정확한 속사정이나 말하지 않은 속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보고 들은 것에 의하면 어느 정도의 공통점은 있다. 필자의 절망적인 인간관계로 인해 친한 여성 지인은 거의 전무하여 남자 입장에서만 보게 되는 걸 감안하자.
첫 번째로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결과인지, 진심인지는 몰라도 착하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잦다. 어떻게 관계를 지속해오는지 정확하게는 모르나 식장에서 만난 형수님, 제수씨 관상과 언행 등을 봤을 때 진짜 착해 보이긴 한다. 착하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흔해빠진 칭찬이지만 가장 복잡하고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이를 테면 주말에 교외로 놀러 나갔을 때 가려고 했던 식당이 문을 닫은 걸 도착해서야 알게 됐다. 안 그래도 배가 고픈데 확인도 제대로 안 해본 동행이 원망스러워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고, 실망했으나 같이 아쉬워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놀러 나온 그날 하루를 전부 망쳐버리는 아쉬운 대처인 반면 후자는 원래 계획에는 실패를 했으나 결국 즐거운 휴일을 보낼 만한 현명한 선택이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얘기인 것 같지만, 의외로 전자의 경우를 경험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착하다는 건 그렇게 흔한 장점은 아니다. 일정 정도 이상의 공감능력과 입장 바꿔 생각할 수 있는 지능, 다정함과 배려가 동반되어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같이 있을 때 불안하지 않게 만드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을 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의 배우자를 착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부럽기까지 하다.
두 번째는 이해관계의 성립이다. 사실 약간 씁쓸한 부분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고, 당사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그런 거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렇다. 나쁜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결혼도 분업을 위한 계약과 같은 측면이 있고, 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결혼정보회사도 이해득실에 기반한 결혼을 진행하며 또 이혼률이 연애혼보다 낮다는 통계도 있기 때문에. 이 경우 보통 양쪽이 주고받는 게 있다. 예를 들자면 한 쪽이 경제적 여유가 있으나 성격이 좀 드세고, 나머지 한 쪽은 경제적 여유를 얻는 대신 그 성격을 좀 받아줘야 한다.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가져가는 식이다. 미묘한 갑을관계가 형성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서로 만족하는 계약이니 문제될 건 없다.
직접 보고 느낀 건 보통 결혼하는 커플들은 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인 것 같다. 이 외에도 세간에 떠도는 배우자를 정하는 기준들은 굉장히 많다. 공감이 되는 경우도 있고, 혹은 멋들어지는 프레이즈만 그럴싸하게 늘어놓지만 알맹이는 없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하나의 기준만 가지고 정하는 건 말이 안 되고, 자기만의 기준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필연적으로 만남과 이별이 있지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고. 개인적인 생각이고 기준이지만, 점점 전통적 가치는 무시되고 수치로 보이는 것들이 중시되는 세상에 아직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이 좋은 배우자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 어느 정도의 조건이나 가치관이 맞는다는 가정 하에 그 이상은 조건 없이, 재고 재단하는 것 없이 사랑하고 배려하는 관계이면 좋겠다. 강인하고 현명하여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이루며 서로를 존중하고 맞추어나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함께 있어도 둘일 수 있고 떨어져 있어도 하나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사실 저 문장에 들어있는 의미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있기는 있는지, 있다고 해도 찾을 수 있는지, 또 내가 그에 걸맞은 사람인지 알기 힘들겠지만 다방면으로 노력은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몇몇 기혼자들은 정말 운명처럼 배우자를 만났다고 했다. 결혼할 생각도 없었는데,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났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할 리는 없는데, 적어도 운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과 결혼했다는 점이 포인트다. 삶이 불확실함과 선택의 연속이라는데, 그 와중에 확신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며 준비해보자. 욕심이라도 생각은 해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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