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대법원. 성폭력 피해자의 합의금 요구, 공갈죄 신중하게 판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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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성폭력 피해자의 합의금 요구, 공갈죄 신중하게 판단해야

기사입력 2024.12.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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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며 합의금을 요구하는 행위를 공갈죄로 단정할 수 있을까요?

 

최근 대법원은 한 여성이 준강간상해 피해를 주장하며 5,000만 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가 공갈미수로 기소된 사안에서, 불송치 처분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 주장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고, 합의금 요구가 정당한 권리행사의 일환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구제와 공갈죄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라 할 것입니다.

 

AB와 함께 모텔에 투숙한 후, 준강간상해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B에게 "합의금 5,000만 원을 주면 조용히 끝내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합의금을 안 주면 남자친구가 너를 어떻게 할지 모른다. 칼을 품고 다닌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합의금을 요구했으나, B가 이에 응하지 않아 미수에 그쳤습니다.

 

이후 AB를 준강간상해죄로 고소했으나, 경찰은 불송치(혐의없음)결정을 하였고, BA를 공갈미수로 고소했습니다.

 

1, 2심 법원은 준강간상해 혐의를 부인한 B의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보아 AB에게에게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나 범위를 넘는 해악을 고지하여 공갈죄의 실행에 착수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공갈미수죄를 인정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습니다(대법원 20243794).

 

대법원은 "A가 합의금을 요구하면서 B에게 한 말이 공갈죄를 구성하는 해악의 고지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A의 이러한 언행이 B가 주장하는 준강간상해죄에 대한 형사소송법 상 고소권의 행사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것인지 또는 당시 A에게 준강간상해죄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나아가 "무고죄의 판단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사실에 관하여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이 내려졌다고 하여 신고 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법리는 공갈죄 성립과 관련하여 정당한 권리 실현의 수단 내지 방법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후,

 

A의 이 사건 발언은 준강간상해죄에 대한 고소권 행사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A에게 준강간상해죄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되고,

 

AB를 준강간상해죄로 고소한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음의 불송치 결정을 하였는데, 그렇다고 하여 B의 준강간상해 혐의에 관하여 무죄가 확정된 것이 아니고 더욱이 BA를 무고죄로 고소한 바도 없어 준강간상해에 관한 A의 고소사실이 허위라는 점이 사법절차에 의하여 판단확정된 것이 아님에도 원심이 준강간상해죄의 성립과 관련하여 이를 부인하는 B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만으로 만연히 성관계를 비롯한 성적 접촉에 관한 동의나 합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사건 발언이 공갈죄를 구성하는 해악의 고지라고 판단한 것은 공갈죄에서의 유죄인정의 증명책임에 반하며,

 

A로서는 준강간상해의 범죄 피해자로서 자신을 인식하며 B를 고소하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합의금을 요구한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입은 피해나 주변 상황 등에 대한 다소의 과장이나 강조가 있다고 하여 이를 섣불리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를 넘는 권리의 행사라거나 권리남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습니다.

 

이번 판결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 주장과 합의금 요구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법리를 제시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고 해서 곧바로 피해 주장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합의금 요구가 정당한 권리행사의 일환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구제 수단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공갈죄 성립 판단에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방식이 개인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권리행사 과정에서 일부 과장이나 강조가 있더라도, 이것이 곧바로 권리남용이나 공갈죄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성폭력 고소사건에서 피해 주장과 합의금 요구가 결합된 경우, 공갈죄 성립 여부를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특히 불송치 처분이 곧바로 고소내용의 허위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은,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구제 수단을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으려는 법원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습니다. 먼저 '과장이나 강조'의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또 어느 정도의 금액 요구가 '정당한 권리행사'로 인정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는 향후 판례의 축적을 통해 보완되어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의 기본권이 균형있게 보호될 수 있는 실무적 지침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박병규이사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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