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지자체의 책임전가, 삼류행정으로 얼룩진 공보의 제도, 원점에서 재검토 할 때”

여수의 한 섬에서 벌어진 대구파견 공보의 인권유린에 의료계 ‘경악’
기사입력 2020.03.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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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국이 마비되고 세계적 대유행(판데믹)까지 선언되는 와중에 공중보건의사(공보의)는 국가 방역의 첨병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일반의로 부터 전문의 자격증을 막 취득한 20대, 30대 젊은 의사들의 희생과 봉사에 의료계는 물론 전 국민이 감동하고 있다. 땀에 젖은 채 몇 시간씩 답답한 방호복과 마스크 착용을 주저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한 채 묵묵히 국민 건강 사수에 나서고 있는 이들의 아직 앳된 모습에 응원과 성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전라남도 여수시의 한 섬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구지역으로 파견을 다녀온 공보의의 숙소로 방역직원이 들이닥쳐 강제적으로 방안에 방역가스를 살포한 것이다. 사전에 어떤 설명도 없이, 사람이 그대로 방안에 있는데 가스를 살포해 해당 공보의는 얼굴과 몸에 그대로 연기를 맞고 방안에 있던 음식까지 다 버려야 했다고 한다. 항의를 받은 전라남도 행정당국은 원래 예정된 방역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치과와 한의과 공보의 숙소에는 방역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사람을 방안에 그대로 둔 채 방역가스를 살포했다.

해당 지역은 보건지소 이외에 의료기관이 없는 섬으로 두 명의 공보의가 교대로 24시간 근무를 하고 있어 한 사람이 차출되면 나머지 한 사람이 쉬지 못하고 계속 근무를 해야 돼 차출이 어렵다는 점을 당국에 호소하였음에도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대구지역에서 돌아온 해당 공보의는 그 동안 격무에 시달린 다른 공보의를 위하여 선택사항인 2주간 자가격리를 포기하고 근무에 복귀하였으나 주민들은 대구를 다녀온 의사가 진료를 한다는 이유로 동요하였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인권유린적인 숙소 강제 방역이 벌어진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행정당국에 있다. 당사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섬의 근무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어떤 대책도 없이 인력을 차출하여, 업무의 부담을 고스란히 공보의들에게 전가했고 그 결과, 차출이 된 공보의는 3주 동안 혼자 섬을 지킨 동료에 대한 마음의 짐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2주간의 자가격리를 포기하고 조기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하여 주민들은 크게 동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이를 중재하거나 주민의 불안을 줄이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황당하고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자 이번에는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이를 무마하려 한 것이다.

사건이 벌어지자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와 전라남도의사회가 당국과 접촉하여 해당공보의의 보호를 위해 즉시 섬에서 나올 수 있도록 협의하였으나 의료공백을 이유로 거절당했고 결국 해당 공보의는 4일 동안 섬에서 불안한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공보의를 그저 ‘중앙에서 파견해준 값싼 의료인력’으로 보고 오로지 의무와 책임만 지우고 어떤 보호나 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의 무책임 막가파식 삼류행정의 끝장판이다. 특히 섬과 벽오지 공보의의 열악한 처우와 행정당국의 무책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료기관이 없는 섬의 경우, 보건지소가 사실상 24시간 응급실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지만 이에 따른 초과근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나 응급상황에서의 법적 책임소재 등이 수십 년째 해결되지 않은 채 그저 ‘늘상 하던대로’ 방치되어 있다. 제대로 된 법적근거를 갖추지 않은 채, 오직 섬에 의사를 가둬 놓고 개인의 사명감과 측은지심을 이용하는 비겁한 삼류행정이 매년 반복되는 것이다. 

젊은 의사를 지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귀한 손님이 아니라 그냥 잠깐 스쳐지나가는 소모품 정도로 여기고 어떻게든 마음대로 부려먹으면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지자체의 ‘싼값으로 젊은 의사 100% 활용하기’ 제도로 전락해버린 공중보건의사 제도는 이제 원점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 

특히, 공보의 제도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는 공보의를 지자체에 배정하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매년 각 지자체로부터 공보의 운용 계획과 현황을 보고받아 엄격하게 점검하고, 동시에 공보의를 대상으로 지자체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지, 불합리한 명령이나 행정조치로 피해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 근무 여건이 열악하지 않은지를 정기적으로 조사하여 문제가 있는 지자체에는 공보의 배정을 철회하는 초강수를 통해 이번 전남 여수에서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계의 동량이자 미래인 젊은 의사들이 이번에 경험한 충격적인 삼류행정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며 보건복지부와 전라남도, 여수시 당국에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하나, 전라남도와 여수시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하여 해당 공보의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 정식으로 사과하고 책임자를 엄중하게 문책하라.

하나, 보건복지부는 공중보건의사 제도 운용과 관련한 각 지자체의 연례 계획서와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여 지자체의 공보의 운용 실태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인원 배정을 결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라.

하나, 보건복지부는 전라남도와 여수시 당국의 대구 파견조치 및 후속조치, 해당 공보의에 대한 인권유린에 대하여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해당 지역의 공중보건의사 인원 배정 취소를 고려하라.

이번 사건은 코로나19로 인한 위험지역 파견을 다녀온 의료진에 대한 혐오가 발단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매우 충격적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의료진의 사기를 꺾고 적극적인 진료를 저어하게 하여 코로나19 사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가 신속하게 책임 있는 후속조치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의사협회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이 문제에 대한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며  만약 이러한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에는 13만 의사는 감염병과의 전쟁 최전선에 있는 후배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기 위하여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2020.3.18.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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